“꿀 떠올 벌들이 다 사라진 마당에…올해 농사는 망쳤습니다”
16일 오전 의왕시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는 장성범씨(60)는 체념한 듯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다음 달 초 벚꽃 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꿀 생산 시기가 다가왔지만, 꿀을 가져와야 할 벌들이 온데간데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씨는 그나마 ‘생존’한 벌통에서 소비(벌집틀)를 꺼내 들었지만, 해당 소비에는 약 30마리의 벌들만 옹기종기 붙어있을 뿐이었다. 장씨가 애지중지 키웠던 벌통 약 150개 중 현재 벌들이 살고 있는 벌통은 고작 10개에 불과하다.
현재 시기는 꿀벌들이 본격적으로 산란을 하는 기간이다. 꿀은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단 3개월 동안 생산되는데, 당장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져 올해 흉작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다. 장씨는 “양봉업에 종사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꿀벌이 전부 사라진 것은 생전 처음 본다”며 “3년전부터 이상기후 등으로 이미 적자였는데, 올해는 역대 최악이니 살 길이 안 보인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꿀벌 집단실종 사례는 양주, 안양, 화성 등 경기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다음 달부터 꿀을 생산하는 경기지역 양봉농가들이 ‘전례 없는’ 꿀벌 집단실종 및 폐사로 위기에 처해 있어 관계 당국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양봉협회가 자체적으로 피해를 집계한 결과, 이달 초 도내 2천941개 농가에서 벌통 4천250개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벌통 1개에 사는 꿀벌 수가 약 2만마리인 점을 고려하면, 경기도에선 약 9천만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셈이다. 일반적으로 월동 기간에는 개체 수가 감소하지만, 이렇듯 집단적으로 벌들이 사라진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원인 파악을 위해 농촌진흥청과 한국양봉협회 등은 민관 공동으로 합동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이 같은 집단실종의 원인은 이상기후 및 꿀벌 응애(진드기) 시 과다하게 사용된 약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것으로 파악됐다. 월동에 들어가야 할 꿀벌들이 10월에도 따뜻한 날씨 탓에 외부활동을 하다 체력이 소진됐고, 밤에는 외부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벌통으로 복귀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림 당국은 종합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혜경 국립한국농수산대 산업곤충학과 교수는 “농작물은 꿀벌에 의한 수정에 의존하는 비율이 80%에 육박하는데, 집단실종으로 농산물 가격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근본적으로는 이상기후가 근본적 원인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적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꿀벌 집단실종 및 폐사 등으로 인해 양봉농가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인지한 후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며 “방제 약품 등이 각 농가에 빠르게 배포될 수 있도록 지자체에 예산을 내려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