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화(火)의 언어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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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안현수, 빅토르 안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영웅이었다. 한국 대표 선수였던 그가 러시아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섰을 때도 비난 여론은 없었다.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셋과 동메달 하나를 러시아에 가져다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겐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선수라는 존경과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 그가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기술 코치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젠 그의 귀화와 중국팀 코치직을 놓고 ‘배신’이라 읽는다. 한-중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 더해 편파 판정까지 불거지면서 감정은 더욱 격화됐다. 안현수의 부인이 한국에서 쇼핑몰 관련 사업을 하고, 아이가 이중국적자로 다문화 혜택 받고 있다는 가족에 대한 비난 여론도 쏟아진다. 국적회복을 방지하는 ‘안현수법’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런 비난 여론은 낯설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난은 한 20대 유명인에게 향해 있었다. 가품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유튜버 프리지아다. 20대 당당한 여성의 상징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온라인상에서 각종 비난세례를 받으며 거짓말쟁이라는 이미지를 쓰게 됐다. 누구나 예뻐 보이지 않은 이에게 비난을 할 수는 있다. 동경하고 좋아했던 이에게 배신감이 든다면 그 분노는 더 커진다. 하지만 한 개인을 향한 지나친 찬사와 지나친 분노, 또 그 대상의 끊임없는 재생산은 옳은 방향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소통 시대는 시시때때로 감정을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게 했다. 넘쳐나는 디지털 매체는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더 큰 이야깃거리로 욕구를 충족하게 한다. 이목을 끌기 좋은 화(火)의 언어는 새로운 자극을 낳고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평온한 날씨도 엄연히 날씨이며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화(火)의 언어가 댓글로 달리고, 보도로 확대 재생산 되는 요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이는 담백한 언어들이 그립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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