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이 심하다. 서양 문화에 대해선 시큰둥하다. 자신들의 문명에 대해선 유독 자존감이 짙고 뚜렷하다. 병적(病的)일 정도다. 대체로 그렇다. 중국인들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그래서일까. 한자로 나라 이름도 ‘가운데’ 중(中)에 ‘나라’ 국(國)이다.
▶영어권 언어에 대해선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연예계나 체육계의 스타(Star)를 부르는 호칭도 따로 있다. ‘밍싱(明星)’이다. 물론 번안(飜案)된 용어다. 달빛과 별빛? 스타는 햇빛 대신 달빛과 별빛에 의해서만 조명을 받는다는 뜻인가.
▶요즘 이 나라에서 부쩍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 있다. 펑솨이(彭師)라는 여성이다. 그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꽤 많다. 원래 말이 많은 민족이지만 말이다. 세계적인 프로 테니스 스타인 그녀와 관련된 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텐진(天津) 대표로 수차례 중국대회 출전, 2013년 윔블던 복식 우승, 2014년 프랑스 오픈 복식 트로피.... 그녀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SNS를 통해 장가오리(張高麗) 前 중국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그리고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갑자기 공영매체에 등장해 기존의 폭로를 철회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면서 의혹이 커졌다. 그녀의 안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당국은 그녀의 첫 번째 폭로 후 관련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세계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는 펑솨이의 의혹을 해소할 때까지 중국에서 열리는 투어 대회 개최를 전면 보류키로 했다. 하지만 WTA의 공식발표 이후 중국 당국의 입장이 바뀌었다. “스포츠의 정치화에 반대한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걸까. 전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당한 게 스포츠의 정치화인가. 과연 그런가.
▶마침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나섰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그녀를 만났다. 외신들의 관측도 한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변한 건 없다”고 밝혔다. 펑솨이를 만난 이후 그렇다는 얘기다. 최근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가. 펑솨이 파문이 그렇게 또 석 달을 넘기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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