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한 섬에 서양인이 도착했다. 원주민들은 그 섬을 ‘발바도스’라고 불렀다. 17세기 중엽이었다. 그는 원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사탕수수를 딴 뒤 설탕 결정체를 발효 시켜 증류수를 만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또 하나의 술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을 지켜본 원주민 한 명이 술을 마신 뒤 탄성을 질렀다. “Rumbullion!”. 원주민의 언어로는 흥분이란 뜻이었다. 오늘날 럼(Rum)이라고 불리는 술의 서사(敍事)다.
▶‘Rumbullion’이란 토속어는 소멸됐다. 하지만 그 접두사는 남아 ‘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적의 술로도 알려진 럼은 산지나 제조법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들이 생산되고 있다. 색깔별로 화이트 럼, 골드 럼, 다크 럼 등으로 나뉜다. 맛을 기준으로 라이트 럼, 미디엄 럼, 헤비 럼 등으로도 구별된다.
▶거친 사내들과 기름진 땅….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럼이라는 술과 관련된 한 사건이 이 대륙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당시 호주에서 럼을 놓고 벌어졌던 한 사건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럼의 또 다른 역사다.
▶원래 호주는 영국의 유형지(流刑地)였다. 영국인 죄수는 물론 각국의 범죄자들도 모여들었다. 대륙 전체가 감옥이었다.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건 1788년이었다. 미국의 독립으로 갈 곳이 없어진 영국 충절파와 유형지를 찾지 못한 죄수들을 위한 땅으로 개척됐다.
▶이런 와중에 반란이 터진다. 호주에 주둔하던 영국 군대가 일으켰다. 럼의 공평한 배분과 자유 주조를 요구했다. 요즘은 술이 군대에서 금지 품목으로 묶였지만 당시는 정량까지 명기됐었다.
▶군대의 정량 요구는 영국사회의 반성과 성찰 등을 불러일으켰다. 총독과 장교들의 목이 날아간 상태에서 새로 부임한 총독은 비상수단을 썼다. 죄수들의 죄를 사면해주고 관리로 등용했다. 영국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호주는 이후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역사는 이날 비롯된 사건을 ‘럼주 반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호주는 없었을 터이다. 1808년 오늘의 일이다. 아주 가끔씩은 조그만 단초(端初)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설연휴를 앞두고 럼 얘기를 꺼낸 까닭이기도 하다. 뚱딴지 같겠지만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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