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제국의 무덤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구촌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었다. 지난해 8월 무렵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였다. 정권이 통째로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에 넘어갔었다. 미국이 철군방침을 밝힌 지 4개월 만이었다. 베트남전 패전 직전 치욕적인 탈출작전이었던 ‘프리퀀트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의 데자뷔였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경우의 수는 1년6개월 유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관측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탈레반의 파죽지세(破竹之勢)에 정부군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었다. 전쟁비용만 2조달러(2천338조원)가 넘는다. 무려 17만여명이 희생됐다. 미군의 침공으로 밀려난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권력을 되찾은 셈이다. 역사의 반복이다.

▶아프가니스탄 현대사는 열강들의 침략과 내전 등으로 요약된다. 주위에는 중국,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권 강국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동 등지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로 열강들이 끊임없이 눈독을 들였다.

▶이 나라를 가리켜 흔히 ‘제국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지정학적으로 중앙아시아 요충지에 있는 탓이다. 국토의 절반이 해발 1천m 이상인 산악이다. 여기에 혹독한 겨울 날씨, 산재한 토착세력 저항 등을 이기지 못했다. 지구촌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나라 중 한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칭이다.

▶이제 미국이 떠나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20년 만의 재집권하면서 강대국들이 손익계산서를 다시 쓰고 있다. 파키스탄,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은 미국의 공백을 이용한 영향력 확대가 예상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어쩌면 당연한 분석이겠다. 미국이 물러난 자리를 자신들이 통째로 차지하겠다는 야욕도 녹여져 있다. 탈레반의 득세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남의 얘기처럼 귓등으로 흘려선 안 된다. 미국 등 서방세계 국가들은 모두 대사관을 철수한 지 오래됐다. 우리 대사관과 교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인수한 아프가니스탄은 계속 존재할 터이다. 정권은 유한(有限)해도 역사는 영원하다. 굴곡 많은 세계사는 오늘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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