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어느 날 저마다 다른 매개체로 인해 잊었거나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스친다.
뇌과학적으로 기억은 불안정한 상태로 외부 충격 등에 따라 소실이 가능한 단기기억과 이미 각종 변형 등의 과정을 거쳐 외부의 충격에도 소실없이 살아남는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장기기억에는 감정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나 슬프거나 괴로움 등의 기억은 우리의 뇌리에 더욱 깊숙하게 남는다.
1개월 남짓의 시간동안 인천 만수동 대공분실을 취재하며 30여년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들을 만났다.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을 지켜야할 기관들에 의해 무참히 자행됐던 독재와 국민의 기본권 침해 과정에 장렬하게 맞서 싸워온 인천의 민주화·노동운동가들이다.
처음 이들은 ‘그때가 잘 기억이 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더니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펼쳐지기라도 하듯, 지금은 믿기조차 어려운 경험들을 쏟아냈다. 그들이 그렇게 생생하게 그날의 감정을, 그들의 행동을 기억하는 건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억을 모두 잊게 만들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에 더욱 의미있는 기억을 더해 바꿔줄 수는 있다. 더이상 그 공간은 당신들이 욕설과 폭행에 시달리던 공간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온 몸으로 막아 지켜냈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분명 우리는 그때를 치열하게 보낸 이들 덕에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렇기에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담은 공간을 후대에게 남기는 것, 계속해 기억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그들의 기억을 바꾸는 길에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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