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디지털 고려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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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상가 앞에서 노인 50여명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노인배제 주민불편 S은행 폐점 반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상가 1층에 자리한 이 은행은 내년 2월쯤 지점을 폐점하고 디지털과 AI기술을 활용한 무인형 점포로 전환할 계획이다. 20~30년 이 은행을 이용한 노인들은 “직원을 없애고 키오스크니 뭐니 하는 거로 은행 일을 보라고 하면 노인들은 어떡하냐”고 항의했다.

노인들은 간단한 입출금거래도 직원들에게 의지하는 실정이라 은행이 없어진다니 막막해 한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는 노인층에겐 불편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오죽했으면 은행 폐점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강추위 속 AI 은행에 맞서 피켓까지 들었을까 싶다.

은행 점포는 매년 줄어든다. 2015년 말 7천281개에서 2021년 하반기에는 6천183개로, 6년새 1천개 넘게 사라지고 있다. 은행의 대면 창구가 크게 줄었는데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 디지털 금융거래를 못하는 노인들은 ‘디지털 고려장’을 당하는 것 같다고 한다.

디지털을 모른다는 이유로 많은 노인들이 은행, 병원, 기차역, 주민센터 등에서 줄서기를 한다. 일상생활 곳곳이 빠르게 디지털, 비대면화 하면서 온라인과 모바일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선진국으로 통하고, 스마트폰 보유율은 93.1%로 세계 1위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 노인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세 억제를 위해 13일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ㆍ음성확인제)를 확인한다. 식당·카페나 미술관, 공연장 등 다중이용이설에서 방역패스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이용자, 운영자 모두에게 과태료를 물린다. 이용자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고 운영자는 1차 150만원, 2차 300만원의 과태료와 함께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수기명부는 안 된다. 스마트폰이 익숙치 않은 노년층 불편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세상살기 참 힘들다는 한숨이 절로 나올만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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