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학년 한자 병행 독서가 ‘문해력’ 지름길

노상학 한길책박물관 학예연구사
노상학 한길책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한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에게 “무운(武運)을 빈다” 라고 덕담한 내용에 대해 “운이 없기를 빈다”로 한 방송사 기자가 뉴스에서 잘못 해석한 상황은 잠시 한바탕 웃고 잊어버리는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씁쓸한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사실 한자 교육 부재에 대한 우려 기사는 이미 40여 년 전인 1980년대부터 우리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신문의 사회면에 등장해 이슈화를 시켰지만, 반짝 그때뿐이었다. 당시 기사 내용을 보면 서울의 주요 대학 학생에게 ‘부모 성함, 본관, 여인숙’ 등을 한자로 쓰기 평가를 해본 결과, 제대로 쓴 학생이 20% 미만이었으며 ‘여인숙’을 여인이 숙박하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학생도 일부 있었다고 하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한자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의견과 한자를 일부 허용하여 교육에 반영하자는 의견이 양분되어 있다. 더욱이 한자어까지도 한글로 바꾸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글의 60% 이상이 한자어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상호 보완적인 대책이 절대적으로 시급한 실정이다.

교육과정 중 국사에 한하여 예를 들어보면 ‘선사 시대, 임진왜란, 한산도 대첩, 훈구파, 무오사화, 임오군란, 병인양요’를 한자의 훈과 음으로 풀어서 먼저 개념부터 가르치면 내용도 훨씬 쉽게 이해할 수가 있어 억지로 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즉 선사시대(先史時代)는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임진년에 왜 나라가 일으킨 난, 한산도 대첩(閑山島 大捷)은 한산도에서 크게 이긴 싸움, 훈구파(勳舊派)는 옛날부터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 무오사화(戊午士禍)는 무오년에 선비들이 재앙을 입은 사건, 임오군란(壬午軍亂)은 임오년에 군인이 일으킨 난, 병인양요(丙寅洋擾)는 병인년에 서양사람이 일으킨 소란” 등이다.

여기서 임진년, 무오년, 병인년을 알려면 天干(十干)과 地支(十二支)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배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처럼 한자는 하나를 알게 되면 다른 하나도 스스로 깨우쳐 결국 문리(文理)가 터져가는 것이다.

박물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물 옆에 표시된 짧은 설명문인 캡션의 일부 어휘조차도 이해 못 한 학생이 종종 있어 필자가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주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교육 부재에 의한 문해력 부족에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기초지식과 배움이 없었는데 나이만 먹으면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이 한자가 아니다. 보통 선입감으로 고령자는 한자에 박식하다고 생각하는데 60~70대도 학령기에 한자 배제정책에 배움이 단절되어 잘 모르는 연령층도 일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학생이 어휘를 한자로 풀어서 이해하는 능력이 생기면 지문을 이해하는 문해력(文解力) 또한 급속히 높아진다.

일선 교사의 경험에 따르면 중학생 일부가 시험문제의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설명해주는 촌극도 있었다고 하지만 한자와 병행한 독서를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행하면 쉽게 해소될 일이다.

글로벌 시대의 미래는 통섭(統攝)과 융합(融合)의 개념을 바탕으로 지식이 통합되는 시대다. 따라서 우리 조상이 슬기와 애민 정신으로 만든 한글을 소중하게 사용해야 함과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역사와 문화 융성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한자를 저학년 교과과정부터 반영하여 상생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노상학 한길책박물관 학예연구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