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특기

사회부 사건팀 장희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따위를 쓸 때마다 괜히 시간을 잡아먹는 칸이 있다. 대학 시절, 취업특강에서 만난 어느 강사는 ‘그 칸’을 직무와 연결 지으라고 했다.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일에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란 말로 들렸다. 예컨대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가 자기소개서를 적는다면 특기에 ‘압수수색’이라 써넣는 게 알맞겠다.

‘먼지털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압수수색은 검찰의 주특기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려고 경찰에 선수(先手)까지 쳤다. 유동규씨 지인이 살던 오피스텔을 털었다. 그렇게 ‘옛 휴대전화’를 찾았나 했더니, 이제 와서 벙어리가 됐다. 유씨의 집앞에선 영장을 쥔 손으로 문을 열어줄 때까지 ‘똑똑똑’ 두드렸다. 그 사이 최근 휴대전화는 창밖으로 날아갔다.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두 달이나 흘렀다. 유씨까지 4명만 기소했다. 수사의 중간발표 정도로 여겨지는 공소장에서 사건의 결말이 보인다. 수천억원이 오간 초유의 사태는 한낱 공기업 간부와 법에 밝은 부동산 업자들이 벌인 ‘한탕’이었다. 민관 공동 개발사업에서 최종 결재권자 모르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지금껏 검찰이 내린 판단이다.

사건의 정점으로 올라가면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나타난다. 그 상대는 전 검찰총장이다. ‘검사 선서’대로 하면 난감할 것도 없다. 다만 정권에 칼을 겨눈 수사팀이 모두 물갈이 당한 꼴을 지켜본 검사들은 수사 대신 정쟁(政爭)에 미래를 걸고 있다. 묶어도 모자랄 판에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수원지검으로 갈라쳤다. 그쪽 검사장이 중앙대 법대 출신인 것도 그저 우연인가.

검찰 조직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검찰총장은 주인공을 특임검사로 임명하며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유독 검사(檢事)만 사람을 칭하는 게 아닌 일 사(事)를 쓰는 이유를 아는지. 다시 당부의 뜻을 담아 그 이유를 설명한다. 깃발을 높이 치켜든 ‘事’의 모습처럼 선봉에서 기준이 돼 주는 게 검사의 본모습이라고. 그걸 국민 앞에 보여주라고.

검찰은 지금 수사의 선봉에 서고 있나, 아니면 정치의 깃발을 쫓고 있나.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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