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기득권 노조의 고용세습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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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 와중에 ‘부모 찬스’ ‘삼촌 찬스’로 취업 문을 뚫는 이들도 있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그 문이 누구에게는 쉽게 열리면, 구직자 입장에선 의욕이 꺾이고 좌절한다.

올해 국정감사에선 국립대학교병원의 친인척 채용 문제가 논란이 됐다. 재직자의 자녀, 조카라는 이유로 채용되는 ‘고용세습’이 여전한 것이다. 최근 2년동안 전국 국립대병원 10곳의 채용현황을 보면, 합격자 가운데 재직자의 친인척이 560명에 이른다. 서울대병원이 142명으로 가장 많았다. 친인척 채용이 모두 불법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 이뤄졌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의 고용세습, 채용비리 의혹은 해마다 국정감사장을 시끄럽게 한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이 사회적 빅이슈가 됐다. 인터넷 포털에는 ‘청년들의 영혼을 빼앗아간 일자리 도둑질’, ‘청년층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범죄행위’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직도 많은 청년이 ‘빽’없은 사람만 취업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기아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정년 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단체협약상 ‘우선 및 특별 채용’ 조항을 준수해야 한다”며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노조 조합원 자녀의 고용 승계에 대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크다. 노조가 노동자 인권이 아니라 자기이익 챙기기에 여념 없는 모습에 구직난을 겪는 청년들은 할 말을 잃는다. 회사 인사권에 개입하고, ‘일자리 세습’, ‘부모 찬스 고용’으로 청년들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의 대졸 청년 고용률은 75.2%로, 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1위다. 청년 대졸자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율도 20.3%로 OECD에서 세 번째로 높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세습은 청년들을 좌절시키고 분노케 한다. 취업전쟁에 지친 청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행위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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