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약사회 약이 되는 약 이야기] 개 구충제를 통해서 보는 의약품 임상시험 바로 알기

최지선 약사
최지선 약사

“이 약이 무슨 암에 효과가 있대요.” 평소에 현명하다 믿는 지인이나 평판이 좋은 유명인의 말이라면 효과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상승한다. 지금 하는 치료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약효가 있다는 말에 더욱 현혹되기 쉬울 것이다.

몇 해 전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 소동이 그랬다.

지금은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한때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항암제로 효과가 있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사람 구충제까지 품절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한 폐암환자가 파나쿠어(펜벤다졸 성분의 제품명)를 복용한 후 암이 사라졌다고 주장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는데,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암 투병기를 영국의 온라인 매체에서 기사화했고, 한국에서 이를 다시 번역하고 편집해서 만든 영상이 암 환우 카페에 공유되고 블로그나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다. 인터넷에는 개 구충제의 항암 효과에 대해 자가’임상시험’을 해보았다는 복용 후기 글과 영상들이 쏟아졌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펜벤다졸의 암 치료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을 정부차원에서 진행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니 국립암센터 연구자들은 펜벤다졸을 포함해서 구충제의 항암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해보려 했다. 그러나 암세포 수준의 연구나 동물실험에서 구충제의 항암효과를 검토해본 후 사람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과학적 가치나 의학적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임상시험’이란 시험 약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유효성을 증명하고자 사람을 대상으로 벌이는 시험을 말한다.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연구에서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시험 약을 대상으로 하며, 동물실험을 통해 심각한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임상실험’이 아니라 ‘임상시험’이라는 표현을 쓴다.

‘실험’은 한번 해본다는 ‘경험’을 말하고 ‘시험’은 정해진 절차에 따른 ‘확인’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어찌 ‘실험’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실험’보다는 ‘시험’이 옳은 방법이라 하겠다. 사람에게 처음 투약을 해보는 단계를 제1상 임상시험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발적 동의를 거친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서, 인체에서의 약리작용과 안전하게 투약할 수 있는 투여량 등을 확인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항암제의 경우에는 윤리적, 의학적인 문제로 제1상 임상시험부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항암제를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해서는 안 되고 경우에 따라 임상시험 약이 치료의 옵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상시험심사위원회라는 기관을 두어 임상시험의 과학적, 윤리적 측면을 심사하게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임상시험은 반드시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시작할 수 있고, 환자에게 오히려 유해하다 판단되면 임상시험 진행 도중에도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구충제 임상시험은 국립암센터에서 검토한 결과 이 단계의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폐암 4기로 투병 중이었던 국내의 한 유명인은 표적 항암제와 함께 개 구충제를 복용했었고, 구충제 복용 과정과 몸의 변화를 대중들에게 자세히 알리면서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개 구충제를 공개적으로 실험해 본 그는 복용 초기에는 쾌유와 희망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몇 달 후 복용을 중단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개 구충제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가족에게 그런 일이 있다면 개 구충제 복용은 반대하겠다는 안타까운 말을 남겼다. 전문가가 우려했던 대로 간 수치가 오르고, 암이 더 퍼졌다고 치료 실패를 고백하는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듣던 날, 그날의 출근길은 복잡한 심경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개 구충제로 암이 완치되었다던 미국의 환자는 국내 방송 매체의 취재 결과, 개 구충제 복용 당시 펨브롤리주맙 (지금은 키트루다라는 제품명으로 사용이 승인된 의약품)이라는 면역 항암제를 투여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임상시험’ 대상자였던 것이다.

임상시험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는 만큼 올바른 정보가 더 투명하고 찾기 쉽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말기 환자들이 병원 밖을 나서도, 사이비 유사과학에 흔들리지 않게 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유행처럼 번지는 카더라 통신을 쫓기보다 전문가와 환자의 신뢰를 굳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최지선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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