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여주도자기 맥을 이어온 조선백자 사기장 이임준 옹을 조명하고 여주도자기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모임 ‘가라말 자기소’가 여주민예총에 의해 출범했다.
㈔여주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 도예분과인 ‘가라말 자기소’는 지난 5일 여주 신륵사관광단지에 자리한 백웅도자미술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첫 작품전을 오는 11일까지 개최한다.
이임준 사기장은 해방 이후 조선 백자의 최고 도예가로 명성이 높았다. 당시 청자에 유근형이 있다면 백자에는 이임준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사기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도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주도자기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이임준 사기장의 조명은 여주도자기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첫 작품전이 열린 지난 5일 인문학강의에 나선 최창석 가라말 자기소 회장(60ㆍ바우가마)은 “여주도자기의 현재와 미래, 조선 최후의 백자 장인 이임준 선생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천 년의 꽃 여주도자문화’를 발표하고 이임준 사기장 조명을 통해 여주도자기의 발전과 부흥을 이끌어내자”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세기 최고의 도예가로 꼽히는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500년 전 조선 사기장의 길을 배우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며“우리나라 도자기는 뛰어나고 그걸 이끌어온 곳이 여주임에도 정작 여주도자기 역사는 한국도자사 연구에서도 미미하게 작용하고 있어 ‘가라말 자기소’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여주는 이미 중암리, 부평리, 오금리, 도전리, 맹골리, 안금리, 오학리 등 여러 곳에서 자기를 생산했던 곳으로 원료의 풍부함, 교통의 용이함, 소비처와의 근접성 등 도자 생산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어서 많은 사기장이 활약했지만, 지금은 도예가들이 점점 여주를 떠나고 작업상황도 열악해지고 있다”며 “1882년 임오군란 이후 갑신정변이 있었던 1884년 원료조달을 못 하게 된 광요인 광주분원이 문을 닫자 분원의 출중한 사기장들이 원료가 풍부한 여주로 이주해왔고 그 맥이 이어지는 가운데 1922년 여주 오금리로 이주해 온 이임준이 백자의 맥을 잇게 됐다”고 소개했다.
사농 전기중 서예가는 “명품 조선백자가 탄생된 것은 여주 오학싸리산 등지에서 양질의 백토가 생산되어 당시 전국 최고의 도자기 시험소인 오학 도자기 시험소가 설립되어 그곳에서 기술과장과 북내면장을 역임했던 이임준 옹이 관직에 근무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당시만 하더라도 도예가 개인적 영예와 심미적 성취의 표현수단으로 보려는 작가주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가 제작했던 빼어난 작품들은 세상 속으로 퍼져 나갔고 다만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해질 뿐인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또 “1936년 일본 교토에서 개인초대전을 열기도 했지만, 작품 도록도 없고 먼발치에서 찍은 사진 한 장만이 남아 있다며 기술적으로 어려운 백자를 막힘없이 해내는 뛰어난 기량으로 조선 도예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사기장과 작가들을 배출한 이임준 사기장의 조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후손들이 조선 도자사와 여주도자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항진 시장은 “천 년의 맥을 이어온 여주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도자산업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지역 도예인들과 다각도로 고민하고 지원할 것이다”며 “이번에 출범한 ‘가라말 자기소’ 회원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조선백자의 우수성을 알리고 여주도자기의 명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가라말 자기소 창립전’ 참여 작가는 고대석(의성도예), 권혁용(푸른하늘), 김상겸(증터가마), 김상범(굴암리공방), 김원주(김원주도예소), 박재국(흙내가마), 서종훈(물맘갤러리), 이경현(이경현도예), 이슬기(이세용도예연구소 사사중), 임의섭(임의섭도예연구소), 전덕선(우치요), 정민세(해밀도예), 최월규(이세용도예연구소), 최창석(바우가마), 홍준기(유약연구소 근무), 이세용 작가 등이 고문으로 있다.
여주=류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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