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 농경시설·화성 축조 재원 마련 위해 설계... 1960년대 한국담배인삼공사 연초제조창 조성
근대화 상징이었으나 자동·집적화로 가동 중단... 市, 대유평 지구단위계획 결정 개발이익 주민 환원
2023년까지 2단계 나눠 11만3천여㎡ 공원 탈바꿈
산업화의 거점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건축물은 ‘골칫거리’로 여겨지기 쉬웠다. 노후화되고 흉물스러워진 건축물들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을 다한 공간과 건축물에 다시 활기를 돌게 하는 성공 사례들도 많다. 수원시에도 산업화시대의 상징이었던 산업유산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 있다. 바로 장안구 대유평공원과 111CM(커뮤니티)이다.
■조선부터 근대까지 산업을 꽃피운 중심지 ‘대유평’
수원시 장안구 대유평은 수백 년의 역사를 따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화서역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터전이지만, 수십 년 전에는 허허벌판이었다.
대유평의 시작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에 화성을 축조해 백성들을 위한 실용적인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정조대왕이 대유평의 최초 계획자이다. 농경 시설 확충과 화성 축조의 재원 마련을 위해 대유둔전을 조성한 것이 1795년이다. 대유둔전에서의 원활한 농업을 위해 만석거와 축만제 등 수리시설도 함께 만들어졌다.
대유평의 첫 번째 변화는 전후 대한민국의 활발한 산업화와 함께 진행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담배를 생산하는 연초제조창을 조성, 1971년 4월부터 공장을 가동했다. 시나브로, 88, 라일락, 한라산, THIS 등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의 담배들이 대유평 연초제조창에서 제조됐다. 한때 1천500명의 노동자가 종사하며 연간 1천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할 정도로 성업한 대유평은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후 담배 산업의 정체기와 공장의 자동화 및 집적화가 이뤄지면서 대유평 연초제조창은 지난 2003년 3월 가동을 중단했다. 폐쇄된 공장과 부지는 20년 가까이 그대로 방치됐다. 그 사이 주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해당 부지에 대한 개발 요구가 이어졌다.
수원시는 지난 2017년 대유평 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하면서 개발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즉, 개발이익으로 자연을 접하며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 주민에게 환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11CM,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다
이달 1일 개관한 111CM은 옛 연초제조창 건물의 일부를 개조해 수원시민들에게 환원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공간의 이름은 주소에서 따왔다. 정자동 111번지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희망을 담아 커뮤니티(ComMunity)에서 C와 M을 조합해 만들었다.
111CM은 단정하게 조성된 공원 안쪽으로 자리 잡은 회색빛 낡은 건물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건축물은 파이고 긁힌 흔적이 곳곳에 남아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기둥들이 6m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배치돼 있다. 콘크리트가 노출된 9m 높이의 천장은 그 자체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구현하고, 벽에는 통유리를 주로 활용해 내ㆍ외부 공간이 확장된 모습이다.
내부 공간은 2개 동과 가운데 야외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내부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공원과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와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지는 것이 장점이다.
내부 A동에는 편의시설이자 휴게공간으로 베이커리카페가 운영되고 있으며, B동은 시민들이 다양한 취미생활과 모임 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특히 2천333㎡ 규모의 B동 복합문화공간은 곳곳을 가변형으로 구성해 상황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구에 갤러리 공간을 지나 라운지와 커뮤니티, 창의예술실험실, 다목적실, 교육실 등이 마련됐다.
■여유와 힐링을 선물하는 대유평공원
111CM을 품고 있는 대유평공원은 공동주택, 대형상업시설 등이 들어서는 개발 부지의 정중앙에 공원을 배치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누릴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2단계로 사업 구간을 나눠 총 11만3천757㎡에 달하는 면적의 공원이 조성된다.
우선 111CM과 함께 지난 28일 사용승인을 받은 1단계 구간은 9만6천여㎡다. 대각선으로 흐르는 부지 모양을 따라 중심부에 나들마당, 생태연못, 생태계류 등이 조성돼 다채로운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주변부에는 숲속놀이터, 왕벚꽃길, 물가쉼터, 전망데크 등이 재미를 더하고, 111CM과 연결되는 부분은 스테핑가든과 자작나무숲을 조성했다.
또 공원은 녹지가 끊어지지 않도록 도로 위로 둔덕을 조성하고 바람언덕과 지붕정원을 꾸몄다. 대형 공동주택단지와 연결되는 부분은 계수나무길과 야생화원으로 만들었다.
가장 큰 특징은 접근성이다. 주변 공동주택단지는 물론 인근 초등학교, 중학교 등은 물론 상가단지 등 어디에서나 누구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주안점을 뒀다.
대유평공원은 아직 미완성이다. 2단계로 1만7천여㎡ 면적이 오는 2023년 하반기에 지하주차장과 상부공원이 결합된 형태로 조성된다. 지금은 주차시설이 미흡하고 도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없지만 2단계 조성공사가 완료되면 불편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향후 2단계 공원사업이 진행되면 북쪽에 위치한 서호천과 남쪽에 위치한 숙지공원을 연결하며 수원시내 도심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역할도 기대된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건물과 장소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문화”라며 “담배공장의 한 터를 남겨 놀라운 변신을 한 만큼 인문도시와 지속가능발전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시민과 함께 나머지 색을 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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