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무늬만 교통약자 우선 지하철 엘리베이터…일반인에 밀려 이동권은 뒷전

24일 오후 수원역 지하 4층 교통약자 우선 배려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 앞이 일반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이정민기자
24일 오후 수원역 지하 4층 교통약자 우선 배려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 앞이 일반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이정민기자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데…선착순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죠”

장애인, 노약자, 임신부 등 교통약자들이 먼저 이용해야 할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일반이용자들의 전유물로 전락,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오후 5시 수원역 지하 4층 엘리베이터 앞.

수인분당선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30여명 시민이 마치 경주를 하듯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0대 여학생 3명도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 앞 줄에 도착해 수다를 떨었다.

경쟁에서 밀려나 맨 뒷줄에 선 70대 여성은 휠체어를 탄 채 길게 늘어진 줄을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2시간 동안 총 16대의 수원역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대부분 교통약자는 뒷줄에 밀려난 채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정자역(수인분당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붙여진 ‘교통약자가 먼저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무색하게 20여명의 일반이용자들이 앞다퉈 줄을 섰다. 구부정한 자세로 가장 뒷줄에 선 70대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시민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원 성균관대역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역시 일반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장애인 박영백씨(63ㆍ가명)는 “아무래도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까지 갈 때 일반인보다 뒤처질 수 밖에 없다”며 “경쟁에서 밀리다 보니 엘리베이터 1번 타려면 최소 2~3회 대기는 기본이다. 무늬만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수단일 뿐, 정작 대부분의 이용자는 이 같은 사실을 인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인수씨(77ㆍ가명)도 “말만 우리 같은 노인들을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라고 한다”면서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직접 보고 대책을 만들어야지, 문구만 붙여 놓는다고 해서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교통약자들의 불편을 해결하고자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 캠페인도 진행해 교통약자 배려 문화를 정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내 장애인, 노약자, 임신부 등 교통약자는 총 369만1천명으로, 도내 전체 인구(1천353만519명)의 27.5%를 차지하고 있다.

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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