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짜리 유동규 공소장, 남욱에게 “땅 못 사면 내가 해결한다”

화천대유 김만배-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연합뉴스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과거 대장동 민간 개발을 추진하던 남욱 변호사에게 사업권을 주겠다는 취지로 제안하고 뒷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가 실제 공사 설립 후 민관 개발이 추진되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화천대유 측에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700억원을 받기로 약속했다고 결론내렸다.

23일 일부 내용이 공개된 A4용지 8장 분량의 유 전 사장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복부장으로 일하던 지난 2012년 남 변호사에게 “공사 설립을 도와주면 민간사업자로 선정돼 민관 합동으로 대장동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유 전 사장은 당시 최윤길 성남시의회 의장을 통해 남 변호사를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는 또 지난 2013년 2월 최 전 의장 주도로 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된 뒤 남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구획 계획도 너희 마음대로 다하고, 땅 못 사는 것이 있으면 내가 해결해주겠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2주 안에 3억원만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남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정재창씨는 각각 돈을 마련해 그해 4~8월 강남 룸살롱 등에서 유 전 사장에게 3억5천200만원을 전달했다. 검찰은 이 돈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공소장에 남 변호사 등이 공사 설립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적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김만배-남욱-유동규.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만배-남욱-유동규. 연합뉴스

검찰은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실제로 화천대유 측에 편파적으로 일이 진행됐다는 점도 공소장에 적었다. 유 전 사장이 김만배씨와 남 변호사로부터 사업자 선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난 2014년 11월 기획본부 산하에 전략사업실을 신설해 남 변호사의 대학 후배 정민용 변호사, 정 회계사의 지인 김민걸 회계사를 채용한 뒤 사업을 주물렀다고 본 것이다.

실무진이 제기한 초과이익 환수조항 필요성도 무시한 채 공모지침서를 작성ㆍ공고하게 하고, 정 변호사를 사업자 선정 심사위원으로 넣어 화천대유 측에 유리한 심사를 진행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화천대유 측과 맺은 사업협약ㆍ주주협약에도 초과이익 환수조항을 넣지 않아 민간사업자에게 거액의 이익이 돌아가게 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이후 유 전 사장이 지난해 10월 성남시 분당구의 한 노래방에서 김씨에게 대가를 요구하자, 김씨가 “그동안의 기여를 고려해 700억원 정도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봤다.

 

대장동 개발 핵심 4인방 거래 의혹.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핵심 4인방 거래 의혹. 연합뉴스

김씨는 700억원 지급 방식으로 ▲유원홀딩스 주식 고가 매수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직접 지금 ▲천화동인 1호 배당금 김씨 수령 후 증여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변호사가 천화동인 1호를 두고 명의신탁 소송을 내 돈을 받아 간 뒤 유 전 사장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제시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은 이들이 홀해 2~4월 여러 차례 논의 끝에 700억원에서 세금 공제 후 428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보고, 유 전 사장에게 부정처사 후 수뢰 약속 혐의를 적용했다. 이 같은 공소사실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과 남 변호사가 제출한 녹음 파일,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해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도 그간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 수준을 크게 뛰어넘진 않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이 없는 데다 유 전 사장이나 김씨가 이 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법정에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혐의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부부인 공사 설립 과정의 도움도 빠져 있다.

유 전 사장의 변호인은 이날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고, 공소사실도 모두 입증되지 않은 내용이라 재판과정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은 특히 검찰이 핵심 증거로 삼고 있는 정 회계사 녹취록의 증거 능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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