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문화유산] 청성사

‘청성사’는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 857년-?)을 모신 사당이다.

최치원은 869년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 879년 중국 당나라 말기의 농민반란 주모자인 황소에 의해 ‘황소의 난’(黃巢-亂)이 일어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한 토황소격문을 지어 적을 물리쳤던 명문장가였다.

청성사는 크게 사당과 삼문으로 구성돼 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를 가진 초익공(初翼工;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춰 댄 새 날개 모양의 목재) 형식의 건물로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우물 정(井)자 형태로 만들어진 마루 형태)로 그 중앙에 최치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 입구에는 솟을삼문(솟을三門; 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이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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