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더 많이 죽고 다쳐도, 외면받는 ‘실버존’

30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노인 보호구역에서 노인들이 차량을 피해 거리를 거닐고 있다. 윤원규기자
30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노인 보호구역에서 노인들이 차량을 피해 거리를 거닐고 있다. 윤원규기자

노인들이 어린이보다 교통사고에 더욱 취약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외면 속에 노인보호구역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년 10월2일 찾아오는 ‘노인의 날’을 이틀 앞둔 30일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의 노인보호구역. 도로 위엔 시속 30㎞ 제한을 알리는 그림이 선명했지만, 차량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특히 바로 옆에 공공실버주택과 요양병원이 있어 이곳을 지나가는 노인들이 많았으나, CCTV나 과속경보시스템 등 안전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화성시 병점1동행정복지센터 앞 도로의 상황도 비슷했다. 주민자치센터와 병원이 있어 다른 곳에 비해 노인들이 쉽게 눈에 띄었지만, 노인들을 보호하는 것은 도로 위 ‘노인보호’라는 글씨뿐이었다. 화성시 측은 노인 통행량이 많아 표시를 했다면서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ㆍ관리하진 않는다고 했다. 인근 시설에서 신청이 들어오면 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지자체가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도내 만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는 2018년 3천612명, 2019년 3천803명, 2020년 2천838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만 65세 이상 노인 사상자는 8천552명, 8천916명, 7천836명으로 어린이보다 연평균 5천명 이상 사고를 당했다. 특히 해당 기간 어린이 19명이 숨질 동안 노인 사망자는 702명에 달했다.

 

어린이보다 연평균 5천명씩 더 다치는데

노인보호구역 개선 예산은 고작 2.8%

그러나 노인보호구역은 그 수와 안전장비부터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7월 말 기준 도내 어린이보호구역은 3천892곳인 반면, 노인보호구역은 341곳에 불과하다. 또 시속 30㎞로 주행 속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달리 노인보호구역은 교통 원활 등의 이유로 시속 50~60㎞의 무의미한 제한을 두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노인보호구역에서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까지 제한할 수 있도록 하지만, 강제가 아닌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정책적으로도 노인들은 외면받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올해 집행 중인 지역교통안전환경개선 예산 2천511억원 중 79.2%에 달하는 1천988억원이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에 집중됐다. 노인보호구역에 배정된 예산은 고작 70억원(2.8%)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건강 증진 등의 이유로 최근 노인 보행량이 늘고 있는데, 노인은 보행속도가 느리고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노인보호구역의 확대가 절실하다”며 “노인 보행자가 많은 지역의 횡단보도 길이를 줄이는 등 교통시스템의 전반적인 차원에서 노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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