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정책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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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준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수석 부회장

보험이 되지 않고 병원에서 알아서 책정하는 의료비를 비급여라고 한다. 의원마다 들쭉날쭉한 비급여 진료비를 잡기 위해 정부가 진료비 공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의료 공급자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원리가 작동해 가격 인하의 효과를 보겠다고 한다. 당연히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싼 가격이라는 것은 환자를 유인하는데 가장 강력한 요인인데, 의료의 질은 빠진 채 가격 비교만 하게 만들면 양심을 지키며 좋은 진료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다.

의료기관마다 가격이 다르고 왜 다른지 알 수 없는 문제를 해소, 환자의 알권리와 선택을 쉽게 해주고자 도입된 게 비급여 가격 공개 제도다.

적용기관이 병원급에서 시작했다가 올해부터 의원급으로 확대되면서 9월부터 심사평가원을 통해 의원별, 치료 항목별 가격이 공개될 예정이다.

그런데 의료계는 모든 의원의 진료비가 한눈에 확인되면 환자들이 싼 곳을 찾아 저가 출혈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저가를 보충하기 위해 과잉진료를 유발해 오히려 국민건강이 훼손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치료는 종합적이어서, 원가 보상률이 낮지만 꼭 필요한 치료인 급여 항목은 진료할수록 적자가 난다. 이 때문에 비급여 항목에서 손실을 메워왔는데, 비급여진료마저 가격이 내려가면 필수 진료인 급여진료를 포기하고 과잉진료로 가게 될 것이다.

특히 꼭 필요한 치료이지만, 건강보험 재정문제 때문에 급여로 하지 못하고 비급여로 남아있는 진료가 많은 치과의 경우 진료의 왜곡이 더 커질 것이다. 또 대부분의 처치가 손으로 진행된다는 치과진료의 특성상 숙련도에 따라 의료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차이를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스케일링을 예로 들었을 때 1시간씩 스케일링을 해주면서 제값을 받는 치과와, 5분 만에 스케일링을 끝내버리지만 저렴한 가격을 공개한 치과를 가격 공개만 보고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정부도 반론 자료를 제출하면서 환자가 적정 가격을 미리 알 수 있고, 과잉진료를 하는 병원은 환자의 발길이 끊겨 퇴출당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진료의 질도 높아진다고 했다.

가격이 내려가면서 질이 높아지는 실제 예가 있느냐고 의료계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한다.

환자들이 저렴한 진료비로 유인되어 의원에 들어가면, 의사와 환자의 정보 비대칭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받으면, 건강이 오히려 더 훼손되게 된다.

진료비 공개의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책을 만들어 놓을 것을 의료계는 요구하고 있다. 덤핑의 가격 광고를 막으려면 비급여 가격의 최소한의 하한선을 정하고, 급여 원가 보장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가격만 비교해 의료기관의 선택권을 넓혀주기보다는 주치의 제도를 확대하여 믿을 수 있는 1차 의료기관에서 주치의에게 정기적인 건강관리를 받는 것이 국민 건강 증진에 훨씬 좋은 방법이다.

장영준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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