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대한 정치가를 기다리며

정치가(statesman)와 정치인(politician)은 얼핏 비슷하지만, 의미가 다르다. 정치를 통해 일가(一家)를 이루고 시대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인이 정치가라면, 정치인에게는 속세적이고 생업적인 어감이 배어 있다. 의미상 명확한 경계는 없지만 우리는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링컨 대통령과 의회 난입사태를 방조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차원의 평가를 받는다는 현실을 쉽게 이해한다.

서구로부터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70여년이 지난 우리나라에서 두 개념 간 구분은 더욱 모호하다. 민주선거 역사도 짧거니와 해묵은 이념대결이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도 정당과 후보자는 저마다 공약을 내걸고, 또 한편으로는 상대 후보자를 흠집 내려 분투한다. 표면은 정책대결이지만 이면을 보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현실성 없는 공약(空約)에 그치는 일도 있고, 상호 간 네거티브 일색으로 인해 오가는 말은 점차 격해진다.

네거티브도 선거전략이다. 이는 사람 마음이 긍정보다는 부정 요인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부정성 효과이론(negativity effect)에 기반한다. 어떻게든 이기고 보자는 정치인의 셈법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으로 포장되고, 결국 선거는 비방전으로 흐른다. 이 과정에서 정책 소비자인 유권자의 권리는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만 켜켜이 쌓인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비방전에서 승리하고 위정자가 돼 훌륭한 정책을 펼친다고 한들 정치가로서 평판을 얻기에는 출발점부터 잘못됐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연간 247조원에 이르는 오늘이다. 지난 3월 통계청 발표에서는 만 19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85.7%가 이념(진보와 보수) 갈등의 심각성을 느낀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선거는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국민통합과 미래설계의 동력으로 기능해야 한다. 남은 기간 정당과 후보자는 국민과의 정책소통을 위해 노력해주기 바란다.

명예란 자신의 도덕적·인격적 존엄에 대한 자각과 타인의 그것에 대한 승인·존경·칭찬을 말한다. 후보자가 대안없는 네거티브로 일관한다면 주권자인 국민은 표로써 심판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정치가는 명예로운 유권자의 손끝에서 탄생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정책에 투표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김태진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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