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미나리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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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삼촌 오스카와 참 닮았네요.” 한 남성이 트로피에 새겨진 얼굴을 보고 혼잣말로 읊조렸다. 오스카상이란 별칭은 그렇게 붙여졌다. 물론 설(說)이다. 공황과 전쟁이 키워드였던 시대였다. 그랬던 지구촌을 달래줬던 청량제가 영화였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이었다.

▶아카데미상 심사는 해마다 전년도에 발표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첫 제정시기는 1927년이다. 영화계 최대 규모이고 최대의 영광이다. 긴 칼을 쥐고 필름 릴 위에 선 기사의 형상을 한 트로피는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트로피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상작 가운데 ‘벤허’가 있다. 11개 부문을 석권했다. 최다 수상 기록이다. ‘타이타닉’(1997년),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003년) 등도 있다.

▶우리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지난해 2월9일이었다.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왕을 기록했다. 기생충을 뜻하는 Parasite라는 영어 단어가 당시 지구촌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정작 연기부문에선 받지 못했다. 송강호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열연했는데도 말이다.

▶영화 ‘미나리’가 또 도전한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작품이다. 미국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아시아계, 그것도 한국계 가족이 미국의 아칸소주 한 농장에서 정착하는 일대기를 다뤘다고 한다. 외신은 이 작품이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수상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윤여정이란 배우다.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고 칭하는 그녀가 데뷔 50년 만에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인 제이컵을 연기한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도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코로나19가 계속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LH 직원 땅투기 의혹과 중국발 황사로 가뜩이나 우울한 정국이지만 이런 소식이 있어 반갑다. 다음 달 열리는 시상식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번엔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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