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몽당연필 끝에 침을 묻혀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행여나 흘려 쓸까 봐 꾹꾹 눌러 긁적였던 기억도 난다. 글 좀 쓰는 친구가 있으면 문투를 베끼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용도 엇비슷했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었다. 손 편지가 낯선 젊은 세대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간혹 운이 좋으면 국군 장병으로부터 답장을 받기도 했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정도의 확률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답장을 기대하고 썼던 편지는 아니었다. 디지털시대를 맞으면서 사라진 아날로그 문화가 어디 손 편지뿐이겠는가.
▶손으로 쓰는 글씨들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안타까운 사고현장에는 손 글씨로 적힌 추모 포스팅들이 나부낀다. 아날로그 시대와는 또 다른 손 편지의 변신이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짧게 적은 내용이 눈길을 끈다. SNS에 올려지는 사진 가운데도 손 글씨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올리는 경우들도 많아졌다.
▶가슴 설레는 연정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달할 때도 그랬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별을 고(告)할 때도 손 편지였다.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이 그랬고 단테의 ‘신곡’도 그랬다. 서간체(書簡體)가 당당히 문학 장르가 되기도 했다. 쓰긴 했지만 부치지 못한 손 편지들도 수두룩했다. 쑥스러웠던 탓이기도 했다.
▶격동(激動)과 질곡(桎梏)의 시대에는 유난히 손 편지가 주목받았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바깥세상을 향해 썼던 메시지들이 그랬다. 일부 편지들은 민주화의 마중 물이 됐다. 물론 이 가운데는 수신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거나 부치지 않은 편지들도 많았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든 게 변한 한해였다. 내년에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어쩌면 올해 우리 자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또 미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머뭇거리지는 말자. 정호승 시인의 시구를 노랫말로 담은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귓가에 맴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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