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문헌에서 배나무에 대해 언급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다. 고구려 양원왕의 통치시기에 왕도의 배나무가 서로 맞붙어 있다는 ‘연리지’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북송의 ‘신당서’에서는 발해의 배나무에 대해 언급이 됐으며, 고려시대에는 배나무를 심어 소득을 높이도록 나라에서 권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당시에도 배는 귀한 식량이자 달콤한 맛을 지닌 귀한 과일로 인식됐던 것이다.
그리고 배는 동서양의 차이가 매우 큰 과일 중 하나다. 사각사각하고 과즙이 많은 동양배와는 달리 서양배는 아삭함 없이 후숙해 물러진 복숭아처럼 먹는 과일로 처음 먹어 본 사람은 그 차이에 놀라곤 한다.
삼국시대부터 사랑받아 관혼상제에 없어서는 안 될 과일로 애용됐던 우리 배는 지금 또 다른 도전을 맞았다. 매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인 과일로 자리매김해 새로운 소비를 촉진해야 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배의 약성은 오랜 옛날부터 언급돼 왔다. 심한 감기가 들었을 때 따뜻하게 꿀과 익힌 배숙을 먹는 것이나, 숙취에 갈은 배를 먹는 등의 민간요법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이고 대중적이다. 배를 먹었을 때 갈증이 해소되고 기침과 열을 다스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것을 체감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배는 다양한 효능을 지닌 성분들이 많이 함유돼 있다. 염증과 바이러스, 병균 등에 대항하고 기름지거나 탄 음식 등이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의 인체 흡수를 막아 암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배의 효능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대사증후군 개선이다. 배 적과 시 버려지는 유과의 추출물로 비만 쥐에 5주간 투여한 결과, 체중과 내장지방이 줄었고 당 대사도 정상수준으로 회복됐다.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된 유과에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다.
또한 배에 아삭한 식감을 주는 석세포 또한 산업적 이용 가능성이 밝혀지고 있다. 두꺼운 세포막이 과육 내부에 박힌 것을 석세포라고 하는데, 이 분말이 미세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체재로 거론된 것이다. 활용 가능한 상품은 치약과 피부 각질제거제다. 배의 서걱거리는 식감은 치아 청결에도 좋다고 여겨져 ‘배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이 내려올 정도다.
아무쪼록 배 재배 농업인들이도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올해 3재를 겪고 나온 우리 배, 달고 아삭한 우리 배, 건강에 좋은 우리 배, 온 국민이 사랑하자.
김완수 전 여주시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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