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초가을의 상념

19년 전 초가을은 경악과 분노로 시작됐다. 태풍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미국의 두뇌집단 중앙정보국(CIA)은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행할 수 없었다. 아프간 탈레반과 알 카에다는 9월 11일을 공격일로 설정했고 기습공격의 버튼은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날 아침, 냉정의 재킷을 걸친 조지 태닛은 악몽의 현실 앞에 아연실색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장은 당장 반격을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느닷없이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뒤인 2011년 봄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처인 파키스탄의 조용한 도시 아보타바드에서 극적으로 피살되고, 신장개업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알 바그다디까지 2019년 제거됨으로써 20년 가까이 전 세계를 공포와 혼돈으로 교란시킨 국제 테러조직은 일단 퇴조현상을 보이게 됐다.

눈에 잘 포착되지 않는 적들로 알려진 테러집단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이번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세계 전역이 다시 고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처럼 적들의 집결지도 없고, 대테러전같이 은신처이자 서식지였던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역도 없다.

테러와의 격전에서 사회주의권과 자유 진영이 따로 없었다. 세계의 공적(公敵) 앞에 유럽연합도 한마음이었고, 중국도 동참했으며, 러시아도 협력했다. 코로나 대유행병 앞에 전 세계가 방역과 퇴치에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인간안보(Humane Security)의 대의 앞에 국제협조주의의 깃발이 나부낀다.

저개발국의 절대빈곤과 자유세계의 양극화의 그늘은 차치하고라도, 매년 심각성을 더해 가는 기후변화의 위협에, 진화하기 힘든 미증유의 팬데믹에 인류는 서로 경계하고 쓰러지고 실려 가면서 상처받고 있다.

한반도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는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도 시달려 왔다. 핵을 평화적으로만 활용하더라도 치명적 순간들이 다가온다. 미국의 쓰리마일 아일랜드의 참사와 우크라이나 북단도시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는 인간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고, 후쿠시마의 대참사는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지론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인류의 위기 앞에 공동의 선(善)과 집단적 지혜가 절실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우주의 행성 가운데 70억 인구가 숨 쉬는 지구만큼 매력적인 행성이 또 있을까. 하나뿐인 이 멋진 지구를 평화로운 대지로, 아름다운 공간으로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현 세대의 고귀한 책무가 아닌가.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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