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줄 몰랐다. 도깨비바늘은 유난히 까칠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소매와 바지 등에 숱하게 달라붙었다. 미륵을 바라본다는 망미리(望彌里). 이 같은 지명에서 발동된 호기심이 결국 겨울 산을 뒤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발품이었고 그렇게 한달여를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야산 중턱 화강암에서 양각과 음각의 미륵불을 발견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가 그윽했다. 2012년 2월 하순이었다.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에서 발견된 미륵불 얘기다. ▶미륵불이 발견된 망미리 인근에는 석불역이라는 중앙선 역사(驛舍)도 있었다. 서울~강릉 고속열차 개통으로 노선이 변경됐지만,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타고 내렸던 역사였다. 지금은 추억의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역의 이름도 바위로 이뤄진 불상을 뜻하는 석불(石佛)이다.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때의 감격을 전했던 당시의 경기일보 1면 헤드라인은 ‘석불 없던 석불역에서 드디어 석불을 찾았다’였다. 이 미륵불 바로 아래 마을의 옛 지명도 석불리에서 비롯된 ‘안 섬부리’와 ‘바깥 섬부리’였다. 미륵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미산(望彌山)도 지척이었다. 앞서 지난 1967년에는 길 건너 월산리 고려시대 절터에서 지름 51.2㎝, 너비 11㎝ 크기의 청동종이 발견되기도 했었다. ▶최근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서 고려 초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발견됐다. 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의 개가(凱歌)다. 이 석불입상은 목이 부러져 있으나 얼굴의 형태와 몸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얼굴은 짧은 코와 두툼한 입술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통의 오른손은 가슴 부분, 왼손은 허리춤 등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옷의 주름도 선명했다. 하인리히 슐레이만도 호기심 끝에 4천년 전 고대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다. 故 양주동 박사의 표현이 명쾌하다. “발길에 채이는 우수마발(牛溲馬勃) 속에 귀한 문화재가 파묻혀 있을 지 누가 압니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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