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KBS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 자키’에 ‘시커먼스’라는 음악개그 코너가 있었다. 코미디언 이봉원과 장두석이 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얼굴을 검은 색으로 칠하고, 흑인의 곱슬머리나 레게머리 가발을 하고 나와 힙합 비트를 배경으로 깔고 그 위에 리듬을 맞춘 코미디 대사를 붙였다.
1980년대 한국은 인종 차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흑인을 ‘검둥이’라 하고, 혼혈아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시커먼스는 1988년 갑자기 폐지됐다. 그 해 열린 서울올림픽에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미화 정비에 나섰다. 시커먼스는 인종 차별 문제가 아닌, 외국인들이 보기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없어졌다.
최근 ‘관짝 소년단’ 사진이 논란이다. 해마다 재기 넘치는 콘셉트로 졸업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의정부고의 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관을 든 ‘관짝소년단’ 사진을 공개했는데 ‘블랙페이스’가 민감한 주제라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학생들은 관을 메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가나 사람들의 장례 풍습을 패러디했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SNS에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퍼요.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라면서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라고 했다. 네티즌들은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가 감히…” 등의 악성 댓글을 달았다. 그가 ‘비정상회담’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양옆으로 찢는 동양인 비하 행동을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그를 추방하라거나 방송 출연을 금지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그러자 샘 오취리는 “학생들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좀 경솔했던 것 같다”며 사과했다.
샘 오취리가 이렇게까지 사과를 해야했을까. 의정부고 학생들이 흑인 조롱 의도가 없었다지만 한국사회에 인종차별 의식이 퍼져있는 건 사실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을 공교육에서 자세히 다뤄줬으면 한다’는 청와대 청원에 공감이 간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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