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지나친 애처가를 두고 이르는 말로, 여기서 예쁘다는 것은 비단 외모만은 아닌듯하다. 남편의 입장에선 자신을 하늘같이 섬기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니 예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을 거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라는 노래도 있다. 그런데도 여성이 화두면 늘 외모가 따라붙는다. ‘채홍사’라는 단어가 온종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
▶홍준표 국회의원은 지난 13일 밤 페이스북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논란은 성추행 혐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페이스북에는 ‘피해자가 한 명만이 아니라는 소문도 무성하고 심지어 채홍사 역할을 한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이런 말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적었다.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가 ‘시장 비서직으로 지원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근거로 채홍사 같은 관리가 박 시장 주변에도 있었음을 빗댄 것이다.
▶채홍사는 ‘채홍준사(採紅駿使)’의 줄임말로 조선 연산군 때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도록 지방에 파견한 관리직이다. 사(使)는 임금님이 부리는 사람, 즉 심부름꾼을 뜻한다. 지금도 외국에 대통령의 공식입장을 전달하는 사람을 사절(使節)로 부른다. 연산군 시절 채홍사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뽑아 왕에게 바치는 신하였던 거다. 왕이 직접 지시했을 것으로 보는 게 옳다. 하지만 왕의 눈에 들려고 자진해서 나선 간신의 충성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주변에는 수많은 간신이 맴돌았다.
▶2015년 5월 개봉한 영화 ‘간신’은 연산군 11년, 무려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했던 간신들의 권력 다툼을 그렸다. 연산군은 임숭재를 채홍사로 임명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미녀를 강제로 잡아들인다. 양반집 자제와 부녀자, 천민에 이르기까지 가리질 않으니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를 기회 삼아 천하를 얻으려 한다. 임숭재는 “왕을 다스릴 힘이 내 손안에 있다. 내가 바로 왕 위의 왕”이라고 외친다. 왕을 속이고 눈을 가리려고 여성을 희생물로 삼았던 거다.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두고 ‘가도 너무 갔다’, ‘망자는 말이 없다고 어떻게 아무 말이나 막 하냐’는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홍준표 의원은 막말 논란으로 본질을 흐릴 때도 있지만 ‘더이상 권력자들에 의한 여성들 성추행을 막으려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사건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이는 망자(亡者)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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