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용인 ‘한국등잔박물관’

대이은 ‘등잔사랑’… 찬란한 빛 밝히다

'우리의 불그릇 등잔'을 주제로 마련된 1층 상설전시실의 '안방'의 모습. 우리 선조들의 삶속에서 등잔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부엌, 찬방, 사랑방, 안방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 기자
'우리의 불그릇 등잔'을 주제로 마련된 1층 상설전시실의 '안방'의 모습. 우리 선조들의 삶속에서 등잔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부엌, 찬방, 사랑방, 안방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윤원규 기자

한국등잔박물관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 56번길 8에 있다.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등잔박물관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이 위치한 능원리는 2011년에 후기 구석기 시대 타제석기 등이 발굴된 역사적인 유적지이기도 하다. 등잔박물관의 모형은 조선시대 성곽인 수원 화성의 공심돈(空心墩)을 모티브로 설계했다. 수원 출신이자 수원화성복원추진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수원화성에 애정이 남달랐던 초대 김동휘(金東輝, 1918~2011) 관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등기구 박물관인 한국등잔박물관의 전경. 등잔박물관은 1969년에 수원에서 고등기전시관으로 출발, 1997년 용인으로 옮겨 개관했다. 윤원규 기자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등기구 박물관인 한국등잔박물관의 전경. 등잔박물관은 1969년에 수원에서 고등기전시관으로 출발, 1997년 용인으로 옮겨 개관했다. 윤원규 기자

등잔박물관은 할아버지 김용옥과 아버지 김동휘 그리고 손자 김형구 3대에 걸쳐 수집한 등잔과 유물을 1969년 수원에서 김동휘 관장이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중에 병원 2층에 고등기전시관(古燈器展示館)을 개장하면서부터 출발한다. 1997년에는 수집한 유물과 민속품이 단지 개인이나 한집안의 소유물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겨레의 문화유산으로 길이길이 후세에 남기고자 정식으로 박물관을 설립해 용인의 현 위치에 재개관한다. 2년 후 1999년에는 전 재산 사회 환원을 통해 비영리 공익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으로 등록한다. 일상의 불과 문명의 불을 밝히는 에너지가 전기로 바뀌는 순간 등잔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날마다 우리 방안을 밝혀주던 소중한 등잔이 하루아침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으로 치부되었다. 김형구 제2대 관장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중한 문화유산이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우리 조상의 손때가 묻은 등잔을 보존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 조상들의 얼을 되새기고 한국 고유의 등잔문화를 연구해 대한민국의 문화정체성을 뚜렷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사명감 때문에 나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호마저 아예 ‘등잔’이라고 지었다. 3대에 걸친 등잔지킴이 활동으로 김동휘 관장은 2004년 제1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보존 관리 부문에서, 김형구 관장은 2013년 박물관 기능 활성화 부문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리의 불그릇 등잔'을 주제로 마련된 1층 상설전시실 '사랑방'에 전시된 등잔과 안경. 등잔은 전기가 보급될때까지 밤을 밝혀주던 존재였다. 윤원규 기자
'우리의 불그릇 등잔'을 주제로 마련된 1층 상설전시실 '사랑방'에 전시된 등잔과 안경. 등잔은 전기가 보급될때까지 밤을 밝혀주던 존재였다. 윤원규 기자

지난 5월20일에는 등잔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화촉(華燭)이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됐다. 전통 혼례에서 상위에 신랑 신부의 화촉을 나란히 세워 밝히는 풍습 때문에 우리는 요즘도 결혼식을 흔히 화촉을 밝힌다고 말한다. 화촉은 그 어원의 출처가 되는 유물이다. 선조들이 연지곤지 찍고 화촉을 밝히며 인륜지대사를 치렀는데 이제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가로등도 없던 시절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조족등(照足燈) 또한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순라꾼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해서 순라등 또는 도둑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인의 주거문화는 온돌문화다. 온돌문화는 한국의 독창적인 주거문화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흔적은 약 6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온돌문화는 한국이 유일하다. 온돌은 구들장이 깔린 방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바닥에 놓인 돌판인 구들장을 덥혀 난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한국 고유의 난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은 약 2천5백 년 전부터 구들장을 채석장에서 적당한 크기로 켜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고, 고인돌을 만들려면 화강암 돌을 켜는 기술이 온돌의 진수인 구들장을 깨는 기술로 전이됐다. 등잔은 이 온돌에서 좌식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등기구라 할 수 있다. 등잔은 불그릇이다. 방안의 불을 밝히기 위해 불그릇을 어디에 올려놓고 쓰느냐를 고민하면서 등잔문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온돌방에 앉아서 생활하는 온돌문화 때문에 받침과 대와 잔으로 구성된 등잔의 높이는 사람의 눈보다 약간 낮게 설정됐다. 불을 방으로 들이는 설계가 치밀하다. 대의 높이에 실용성ㆍ예술성ㆍ과학성이 농축됐다. 한국의 고유한 온돌문화와 한국식 등잔문화는 한국문명의 줏대였다. 그래서 한국식 등잔문화가 없는 곳에는 온돌문화도 없다. 이 점이 세계 유일의 등잔박물관이 한국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을 지킨 빛'과 '예를 밝힌 빛'을 주제로 전시된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등기구의 변천사와 실내외에서 사용한 다양한 등기구를 볼 수 있다. 윤원규 기자
'일상을 지킨 빛'과 '예를 밝힌 빛'을 주제로 전시된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등기구의 변천사와 실내외에서 사용한 다양한 등기구를 볼 수 있다. 윤원규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온돌문화가 중국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형구 관장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일한 한국등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보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역사적이고 국가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등잔박물관에서는 오랜 준비 끝에 한반도 고유의 온돌문화와 등잔문화의 기반이 되는 민족의 이동경로와 고인돌에 대한 연구서로 ‘코리안의 기원’(저자 최무장 고고학박사.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이라는 책자를 작년에 발간해 온돌문화의 논리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등잔박물관에서는 온돌이 우리 문화임을 증명하는 공공기관이 없는 점을 감안해 향후에 ‘온돌과 등잔 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등잔박물관 전시실은 1층과 2층의 상설전시실을 비롯해 3층에는 다목적 문화공간이 마련됐고 지하의 교육실과 농기구 특별전시관 및 야외 전시공간으로 구성됐다. 1층 전시실은 부엌과 찬방과 사랑방 및 안방으로 구성됐다. 먼저 부엌 부뚜막에는 가마솥과 함께 등잔이 놓여 있고 벽에는 벽걸이 등잔이 걸려 있다. 부엌 바로 앞 찬방은 부엌 살림살이를 두는 곳이자 음식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그래서 도자기 그릇들이 즐비하다. 안방에는 종지형 등잔과 화로, 자개농과 화장대인 경대 그리고 바느질 꾸러미와 다리미, 화조도 병풍, 민속문화재 제15호 화촉(華燭) 등이 진열됐다. 사랑방은 선비가 공부하는 방이다. 글을 밝히는 죽절문(竹節文) 문양의 서등(書燈)이 제격이다.

지난 5월 20일 경기도 문화재 14호로 지정된 조족등. 조선 후기 순라군이 사용한 이 유물은 보통의 조족등이 기름종이로 만든 것과는 달리 박을 잘라 만들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윤원규 기자
지난 5월 20일 경기도 문화재 14호로 지정된 조족등. 조선 후기 순라군이 사용한 이 유물은 보통의 조족등이 기름종이로 만든 것과는 달리 박을 잘라 만들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윤원규 기자

석유는 1876년부터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물성 기름과 식물성 기름을 쓰던 종지형 등잔보다는 석유를 주연료로 하는 호형등잔이 등장한다. 호형등잔은 종지형 등잔에서 볼 수 없었던 뚜껑이 달렸다. 석유가 휘발성이라 열어두면 날아가고 인화성이 강하며 냄새 또한 고약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바뀌니 등잔이 바뀌고 등잔이 바뀌니 일상의 빛도 달라진다. 이렇듯 등잔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2층 전시실에는 등잔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전시했다.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등 각 시대별로 대표적인 등잔을 배치했다. 특히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조족등이 길을 밝힌다. 고려는 불교국가라서 염주모양의 대를 하고 있고, 조선은 유교국가라서 선비의 절의를 상징하는 대나무 모양의 대가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한지를 잘게 찢어 꼬아 만든 끈으로 등잔을 만든 후 겉에 기름칠을 한 지승기법(紙繩技法)의 등잔도 보인다. 심지가 두 개인 쌍심지 등잔도 등장한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켠다”라는 말이 실물로 다가오니 재미있다. 쌍심지 두 배인 사심지 등잔도 옆자리에 버티고 있다. 사심지는 부자 등잔이다. 석유를 많이 소모시켜 아무나 사심지 못 켠다.

야외 전시공간에는 정겹게 웃는 장승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등잔 모양의 박물관 건립기념탑은 밤을 열어주는 등잔을 예찬한다. 농기구 특별전시관에는 어처구니가 없는 맷돌, 디딜방아, 쟁기, 멍에, 지게, 되, 달구지, 삼태기 등이 기다린다.

등잔박물관은 경기도와 용인시가 지원하는 ‘2020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에 4년 연속 선정되어 <눈으로 담아, 마음에 새기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었으나 7월 3일부터 예약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하반기 9월에서 11월까지는 <선조들이 남긴 보물을 만나다> 기획전이 준비됐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고고학전문가를 초빙한 특별강연도 진행된다. 등잔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고등기 전시관부터 수집되기 시작해 김형구 관장이 할아버지, 아버지와 3대에 걸쳐 모은 다양한 등잔을 볼 수 있다. 윤원규 기자
고등기 전시관부터 수집되기 시작해 김형구 관장이 할아버지, 아버지와 3대에 걸쳐 모은 다양한 등잔을 볼 수 있다. 윤원규 기자

온돌문화와 등잔문화는 한국문명의 뿌리이다. 돌과 불은 한국문명의 원형을 담고 있다. 등잔을 보면 등잔불에 바느질하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등잔불 밑에서 꿈을 꾸던 어릴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권행완(정치학박사, 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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