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슬기로운’ 고3생활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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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올해 첫 모의고사를 봤잖아요. 수학이 1등급이랍니다. 시험 보면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먼저 전화를 했더라고요….” 작년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선택한 아들을 둔 부서원이 대놓고 하는 자랑이다. 기숙형 학원에 들어가 4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이니 나였어도 입이 근질근질했을 거다. 코로나19가 이 정도까지 심각한 지경에 이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때에 기숙사 행을 택한 아들이 고맙기까지 하다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올해 대입 전망을 ‘재수생 유리’로 점치고 있다.

▶지난달 20일 고3 학생들이 우여곡절 끝에 등교했지만 입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수생은 기본적으로 수능 경험이 있다. 학원에 다니면서 자체 모의고사를 통해 감도 익혔다. 하지만 고3 수험생들은 모의고사가 늦어지면서 객관적 성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사일정도 숨 가쁘다. 등교 다음날 첫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렀다. 6월 들어서니 중간고사가 기다린다. 이어 모의평가가 시행되고 곧바로 기말고사다. 중요한 시험이 연속되니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울 비 교과 활동은 엄두도 못 낸다.

▶실기 수업이 입시에 직결되는 예술고 학생들은 비상이 걸렸다. 학교에 있는 연습실이 유일한데 등교를 못했으니 연습량이 부족한 건 당연하다. 문제는 경제적인 여유로 사적 공간을 빌려 실기 연습을 하고 고액 과외와 맞춤형 관리를 받은 수험생이 있다는 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난이도를 조절할 때 코로나19사태를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난이도가 ‘높다’, ‘낮다’는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같은 시험이라도 수험생 수준에 따라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우리나라서 고3으로 산다는 건 매우 힘들다. 수능 날 ‘사회적 배려’만 봐도 알 수 있다. 수험생 편의를 위해 관공서와 기업체의 출근 시간이 1시간 늦춰진다. 시내버스는 등교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차된다.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운행 횟수도 늘어난다. 개인택시의 부제운영도 해제한다. 정부가 나서 시험장 주변을 지나는 버스나 열차 등은 서행하고 경적을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심지어 언어영역 듣기평가가 시행되는 시간엔 항공기 이착륙마저도 금지한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 걱정이 태산인데 교육 당국은 손을 놓은 모양새다. ‘고3들이 대입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 ‘고3 학생들의 비 교과 활동의 어려운 점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를 논의 중’이라고만 할 뿐이다. 고3 수험생 자신이 ‘슬기로운’ 고3 생활을 해야만 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비 교과 활동이 줄어든 만큼 3학년 내신성적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게 최선이라는 뜻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순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박정임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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