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된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도 시행 초기 한정된 예산으로 전국민에게 적용하다 보니 건강보험적용 범위가 제한되었고 의료행위별 건강보험수가도 충분히 책정하기 어려웠다. 이를 구조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 비급여제도이다. 책정된 건강보험수가로는 병원이 진료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니 비급여를 통해 부족한 건강보험제도를 보완한 것이다.
대학병원 진료 시 발생하는 선택진료비, 각종 고급의료기술을 통해 병원들은 건강보험수가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보완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경영에 유리했기에 이런 기술들은 계속 발전했다. 이런 과정들이 누적되어 임상 의료 수준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국민의 질병발생 시 의료비용 지출은 높은 편이다. 실비보험제도가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의료비 관련 고정지출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의 정부는 건강보험관련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강보험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중증질환에 대해 국민부담률을 줄이고자 더 집중하고 있다. 이는 방향성에서는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한정된 예산에서 무리하게 적용 범위를 넓히다 보면 부득이 수가 반영에서 적은 금액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대형병원에서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건강보험수가는 원가의 68% 수준이다. 당장은 정부도 국민도 만족할 수 있지만 지금의 방향으로만 가면 병원 입장에서는 경영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병원들은 비용지출을 최소화하고자 인력감축을 시도할 것이다. 또한 의료재료비 관련 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는 재료질의 저하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잘못하면 불량률이 높은 재료가 사용될 수도 있다. 생활에서 쓰는 물건이 아닌 사람 몸에 들어갈 물건에 불량이 생기면 이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대다수 의료인이 코로나19사태에서 보듯이 사명감을 가지고 진료를 하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임상 의료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보건의료제도의 발전에는 반드시 양적인 발전과 질적인 발전이 함께 가야 한다. 국민의 건강보험료지출은 다소 늘더라도 이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수적임을 설득해야 한다. 실비보험이 필요 없어지면 오히려 국민 입장에서 의료비 관련 고정지출이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 국민에게 부담을 안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 건강보험예산에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을 최대한 올려야 한다. 법에 명시된 비율에서 건강보험예산이 흑자라는 이유로 행해온 최소한의 비율이 아닌 충분한 비율로 정부가 예산을 보태주어야 한다. 또한 담배나 술 판매 등 건강관련 분야에서 걷는 세금을 건강보험예산으로 전환시켜 주어야 한다. 의료계도 힘들겠지만 최대한 정부와 협의해 건강보험적용 범위를 넓히고 비급여 수가를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데에 협조해주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보여준 후 국민에게 협조와 이해를 구하면 국민도 동의해 줄 것이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의료시스템이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 진통은 있더라도 피할 수는 없다. 21대 국회가 열리면 수많은 쟁점이 다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제도 발전이 21대 국회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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