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6일 밤 10시30분, 당직근무를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에 도착한 뒤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TV채널을 돌리다 MBC ‘100분토론’에 흰머리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나와 나이, 직업,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했다. 보수 야권 인사가 재난기본소득은 ‘위기를 틈 탄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맹비판하는 것을 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4월20일 밤 9시, 당직근무를 서다 온라인으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했다. 기회되면 쓰고 못 쓰면 기부할 생각이었다. 4월30일 석가탄신일, 당초 출근일이었지만 갑자기 쉬게 됐다.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동네 미용실에 가서 컷트를 하고 2만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어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에 꽃집에 들러 노란 카라 화분을 2만원 주고 샀다. 친구한테 받은 쿠폰으로 케익을 사면서 추가로 4천원을 결제하고 시원한 커피도 한잔 사 마셨다. 이날 오후 딸아이는 본인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엄마 신발사는데 보탰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은 동네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여기까지가 남양주시 다산동에서 하룻동안 이뤄진 재난기본소득 사용 후기다. 딸과 함께 집 주위 반경 10km 내에서 기분좋게 소비를 했다. 30년 넘게 다산동에서 살면서 미용실 사장님, 꽃집 주인, 카페 아르바이트생, 신발매장 매니저, 치킨집 배달원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며칠 후 신용카드 사용(재난기본소득 차감) 안내문자를 받고 웃은 것도 처음이었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이 시작됐다. 딸아이에게 기부를 하는 게 어때라고 물었다. 녀석은 단호하게 싫다고 거절했다. 나라에서 쓰라고 준 돈이니까 본인 몫은 본인이 알아서 쓰겠다고 한다. 11살 아이는 학교 앞 문방구 가서 학용품도 사고, 아파트 옆 작은 분식점에 가서 떡볶이랑 꼬마김밥도 사먹고 싶다고 했다. 또 빨리 개학해서 친구들과 함께 동네 서점 가서 책도 사고 싶다며 잠이 든 딸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딸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강현숙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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