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뛰어넘어 정조의 꿈·민본정신과 마주하다
경기도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이 찾는 박물관을 묻는다면 단연코 수원화성박물관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말이나 공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수원화성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요인이겠지만, 그 안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의 중요성이나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이 수원화성박물관을 찾는 결정적 이유이다.
수원 화성은 조선 성곽의 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조선의 모든 성곽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들이 화성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화성은 산성의 역할과 평지성의 역할이 함께 나타난 ‘평산성(平山城)’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도성(都城)으로 만들어진 성곽이기에 성곽 안에 유천(柳川)이라는 시내가 흐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에 있는 읍성은 관아와 군사시설물 위주로 되어있는 반면 수원 화성은 관아와 각종 관청 건물, 장용영 군사들, 백성과 상인들 모두가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5.74km라는 매우 긴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곽 밖으로 많은 논을 만들어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수원 화성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수원화성박물관이다.
수원화성박물관은 2009년 4월27일에 개관하였다. 조선시대 개혁군주의 대명사로 평가받고 있는 정조대왕의 즉위일인 1776년 3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정조대왕의 즉위일로 개관일을 맞춘 것은 21세기 수원 및 경기도의 문화융성의 중심축으로 성장하려는 바람을 담고 있다.
화성박물관은 개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와 특별기획전 그리고 체험교육 프로그램과 주민들과 함께 하는 상설 프로그램 운영으로 대한민국의 전체 박물관 중에서 단위 면적당 두 번째로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박물관으로 성장하였다. 지난 2009년에는 대한민국 건축대상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전시와 건축디자인 모두에서 최고의 박물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 번암 채제공 유물 기증
수원시는 1997년 12월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시는 화성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이후 2003년 수원 화성행궁을 복원하면서 화성을 알릴 수 있는 박물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화성을 알릴 수 있는 특화된 박물관 건립은 민선1기 심재덕 시장 때부터 기획되었지만 본격적인 추진은 민선 3기 김용서 시장 때였다.
박물관 건립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시운영계획의 수립이다. 이때 유물 수집과 전시 그리고 건립 위치에 대한 적절성을 세운다. 문제는 여기에서 벌어졌다. 수원시가 소유하고 있는 화성 관련 유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거짓말 같은 역사가 일어났다. 바로 정조대 최고의 명신(名臣)이었던 번암 채제공 선생의 모든 유품이 그대로 박물관으로 기증된 것이다. 화성성역총리대신으로 화성축성을 이끈 장본인이며,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 선생의 후손인 채호석, 김양식 선생님께서 번암 선생의 유물을 일괄 기증해 주셔서 박물관 건립의 초석이 되었다. 이때 기증받은 대표적인 유물이 보물 1477호로 지정된 채제공 선생의 초상화와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어찰, 번암집 필사본 등이다. 채제공 선생의 유물이 기증되면서 박물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이후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때 경기관찰사 조돈을 임명한 영서(令書),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조선시대 최초의 무예훈련 교범인 한교의 ‘무예제보’ 등을 구입하여 박물관에 소유하고 있다.
모든 시설물을 지을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건축비의 조달이다. 수원시가 아무리 큰 도시여도 박물관 건립비가 무려 627억 원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 조달이 어려웠다. 다행히 국비와 도비를 포함한 토지보상비와 건축비가 3년 안에 공급이 되었기 때문에 건립이 가능했다. 더불어 박물관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많이 있었지만, 화성과 연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하자는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수원 화성 내 가장 중심부지에 건립할 수 있었다.
■ 전시실 구성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축성과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과 어린이체험실을 중심으로 하는 체험교육 공간, 그리고 수원지역의 시민 및 연구자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21세기 박물관은 전시 위주의 건립방식에서 벗어나 전시와 체험 그리고 교육이 삼위일체가 되는 박물관 건립을 지향한다. 따라서 화성박물관도 이러한 박물관 건립 취지를 살려 전시, 체험, 교육의 비례를 맞추어 공간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 성곽 내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지역문화센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무예24기 교육, 어린이 화성 교육, 수원천과 어우러진 역사와 융합한 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크게 세 곳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전시와 화성의 축성과정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과 화성의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는 화성문화실이다. 야외 전시의 대표적 전시물은 바로 실물과 같은 크기로 재현한 거중기와 녹로를 비롯한 화성축성에 사용된 과학 기자재이다. 높이 11m에 이르는 거중기와 녹로는 화성 축성 당시 높은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계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전시물은 바로 정조대왕의 태실이다. 조선시대 국왕의 태실은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정조의 태실의 석물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기에 화성을 축성한 정조의 태실을 일반 관람객을 위해 똑같이 모각하여 전시하였다.
전시의 기본 방향은 에코뮤지엄인 수원화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구성이 특징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박물관과 인접하고 있기에 박물관 전시에서는 화성의 시설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성 축성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였다. 수원 화성이 어떻게 축성되었는지, 누구에 의해 주도되었는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스토리텔링 기법에 의해 전시구성이 이루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 일반인들에게 축성 과정을 쉽게 이해시켜주기 위해 모형 전시를 65%, 관련 유물 전시를 35%로 구성하였다.
상설전시관인 화성축성실에 들어서면 황금갑주를 입고 백마를 탄 정조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조가 화성을 행차할 때 입었던 황금갑옷과 투구를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작한 것이다. 화성 축성에 사용된 축성기법을 확인하는 모형과 중국과 일본 성곽의 축성기법 모형도 함께 전시하여 삼국의 성곽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표적 유물로는 화성 축성을 알려주는 ‘화성성역의궤’와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하사한 정조의 비밀어찰, 그리고 규장각과 화성박물관만이 소장하고 있는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완질본을 비롯한 여러 기록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국왕을 대신해 관리를 임명한 국내 2점 밖에 없는 왕세자 유훈교서도 볼 수 있다.
화성문화실은 1795년 윤2월에 있었던 정조의 8일간의 행차를 재현하는 내용이다. 정조는 위민정책을 추진하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는 화성행차를 단행하였고, 이 행차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정조의 화성 행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팔폭병풍 모사도와 화성유수 번암 채제공의 영정을 비롯하여 정조가 하사한 비밀어찰과 필사본인 번암선생집을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화성을 지킨 장용영 군사들의 복식과 다양한 무기를 전시하여 조선시대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박물관내에 있는 영상실과 강의실은 평생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수원 화성박물관의 앞으로의 기대효과
수원화성박물관은 개관한 지 12년 밖에 되지 않았으나 전국에서 모범적인 10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해마다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되고 있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행궁동 마을 주민들의 반짝 시장도 열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수원 화성과 연계한 많은 관광콘텐츠의 개발로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아울러 수원화성박물관은 지역문화 센터와 정조의 정치사상 및 화성 연구의 학술연구기관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준혁(한신대학교 교수, 한국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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