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을로부터 금원을 차용하면서, 위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생산기계에 관하여 점유개정 방식으로 양도담보를 설정했다. 그런데 그 후 갑은 위 기계를 임의로 제3자에게 처분했다. 이 경우, 갑은 형사상 배임죄로 처벌받을까?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355조 제2항).
기존 대법원은 동산양도담보 목적물을 채무자가 처분한 경우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대내적 관계에서 채무자는 소유권을 보유하나 양도담보권자가 담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이를 보관할 의무를 지게 되어 채권 담보의 약정에 따라 담보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게 되므로 채무자가 양도 담보된 동산을 처분하는 등 부당히 그 담보가치를 감소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해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해 왔다(대법원 1989년 7월 25일 선고 89도350 판결 참조).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례로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그 소유의 동산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함으로써 채권자인 양도담보권자에 대하여 담보물의 담보가치를 유지ㆍ보전할 의무 내지 담보물을 타에 처분하거나 멸실, 훼손하는 등으로 담보권 실행에 지장을 초래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했다(대법원 2020년 2월 20일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결과적으로, 동산양도담보 설정자(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계약상 의무 불이행에 따른 민사적 책임(손해배상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하겠지만, 위 변경된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동산양도담보 설정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형법상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준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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