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기부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세계나눔지수(World Giving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년 10년 누적 기준 한국의 기부지수 점수는 34%, 순위로 126개국 중 38위였다. 이는 갤럽이 조사시점 기준으로 전월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를 설문해 백분율로 환산한 결과다. 한국과 기부지수 점수가 비슷한 국가로 우즈베키스탄(35%), 파라과이(34%), 레바논(33%) 등이 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순위는 중하위권으로, OECD 국가 가운데 20위였다.
4일부터 기초생활보장수급,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수급 대상 270만 가구를 시작으로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나머지 가구는 11일 온라인 신청을 받아 13일부터 지급되는데 정부는 신청 과정에서 기부의사를 표시하거나 3개월동안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기부한 것으로 간주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 재난지원금 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송영길 백혜련 서영교 의원 등이 기부 의사를 밝히며 ‘릴레이 기부’를 확산시키고 있다. 송영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원금을 기부하면 15%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기부금은 고용보험기금 재원으로 활용되는데 나와 가족은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며 “여유있는 분들이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하는 자발적 기부운동이 일어나 대한민국의 새로운 감동을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원시, 세종시, 서울 서초구 등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기부가 ‘반강제적’ 또는 ‘관제 기부’로 비쳐질 수 있어 정부는 자발적 의사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사회 곳곳에서도 기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 조계종은 주요 소임을 맡고있는 스님 5천여명의 재난지원금 기부를 결정했다. ‘착한 기부’라는 칭송이 이어졌다.
재난지원금은 가구 기준으로 1인 가구 40만원, 2인 가구 60만원, 3인 가구 80만원, 4인 가구 이상 100만원이 지급된다. 현금 또는 ‘소비쿠폰’ 형태로 지급돼 그만큼 소비 여력이 더 생긴다는 측면에서 ‘기부’보다는 ‘사용’이 각 가구에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소비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면 재래시장ㆍ식당ㆍ미용실 등 생활영역으로 당장 갈 수도 있는 돈이 사라진다. 때문에 소비가 우선이지 기부를 강요할 일은 아니다. 자발적 기부를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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