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문학적 詩 읽기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 시려운 새들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이상국 <살구꽃>

내 마음에 글상자에다 간직했다가 봄이 오면 다시 꺼내어 들고 싶어지는 이 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이자 시인 이상국(李相國·1946~ )의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 2005)에 ‘살구꽃’이 처음 보인다.

처음엔 맛이 좀 싱거웠다. 밋밋했다. 유명한 맛집 찾아서 한참 줄을 서서 들이킨 냉면 후기와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점이 그닥 높지 않았다.

한 번 먹고, 또 두어 번이 반복되면서 “햐! 이 맛이지”하는 경험을 어느새 체득하는 것처럼 여러 번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훑어서 이 시를 찬찬히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맛이 좋다. 감상이 풍부지고 깊어질 것이다.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시인의 고향은 강원도 양양이다. ‘서문리’라는 지명은 양양읍에 실은 행정구역으로 주소하고 있다. ‘짚가리’는 농사 추수를 모두 마치고 볏짚을 묶은 단을 차곡차곡 마당 한쪽에 ‘짚단을 쌓아올린 더미’를 가리킨다. 이 분위기는 뭐랄까, 상상이 된다. 몹시 평화롭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숩게 느껴진다. 이 때문이다.

이장네 마당은 점잖게 행화촌이자 동네의 술판이 왁자하게 벌어지는 사랑방(집)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겨울 발 시려운 새들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의경과 그 시적 상상력이 눈 뜬 장님이었던 우리를 향해 점안을 부추긴다. 마치 조선조의 인파선사가 남긴 ‘오도송’의 구절과 그림이 겹쳐진다. 오버랩 된다.

樹樹皆生新歲葉 수수개생신세엽

나무마다 새해 되면 잎이 나지만

花花爭發去年枝 화화쟁발거년지

꽃은 언제나 (지난 겨울) 묵은 가지에서 피네

시에는 하나도 술(酒)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의 마지막 뒤에는 한 줄의 문장이 더 적혀 있어야 하는데 부러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웃과 벗을 향해 시속 화자가 던지는 의도 된 메시지인 셈이다. 예컨대 “살구꽃 피면 놀러오시게, 우리 술이나 한잔 함세.” 이런 정담의 시적 문구가 빠진 것이다.

살구꽃은 복사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근심과 번뇌를 잠시 잊게 해주는 꽃이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를 스스로 취해야 했던 많은 국민들. 이제라도 옛 선인처럼 지인과 벗에게 시 한 편을 적어 더불어 “언제 차(술) 한 잔 하자?”라고 안부 물었으면 참, 좋겠다.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들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듭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술을 마시지 않고 어쩌겠습니까?”(今紅杏微坼 春氣融怡 使人情惱亂多感 佳節如此 不飮何爲)

<간찰-선비의 마음을 읽다>(심경호 지음, 한얼미디어)에 앞에 글이 보인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가 친구 전탄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다정다감하다.

글과 같이 친구나 가족, 따뜻한 이웃을 향해 문자서비스(SNS) 몇 줄이라도 삼춘의 봄이 다 가버리기 전에 그에게 가서 그의 안부를 우리 여쭙자.

심상훈 인문고전경영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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