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흐린 기억 속의 통닭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했던가.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퇴근 후 아버지가 사오시던 통닭이 떠오른다. 월급날, 자식들의 생일, 아니면 다른 축하할 일이 있으면 의례적으로 사오셨던 것이 통닭이다. 누런 봉투에 기름이 배고 냄새가 코끝 후각을 매료시켰던, 어린 우리에겐 당대 최고의 풍미를 간직한 요리였다.

집 주변에서 친구들과 비석치기를 하고 있거나 구슬치기, 잣치기, 땅따먹기, 오징어 가이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 들리는 ‘저녁 먹자’라는, 엄마의 재촉 담긴 목소리는 좀 더 즐겁게 뛰놀고 싶은 마음에 속상함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통닭 사오셨다’는 말은 즐기던 모든 놀이를 순식간에 무장해제적으로 내려놓으며, 걸음에 가속도가 저절로 붙어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게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치킨과 하느님을 신성시한 ‘치느님’으로 불렀겠지만, 당시 통닭은 그 어느 것도 이에 견줄 수 없는 천상천하 신성스런 음식이었다. 겉 껍질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고소했으며, 속살은 적당한 육즙을 가둬 입술을 번지르르하게 바르며 부드럽게 목넘이를 했다. 게다가 시큼함 이상의 새콤달콤한 환상적 식감의 깍뚝무는 아직도 소환된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프라이드 가마솥 통닭은 부위별로 다양한 맛을 선사, 동공을 확장시키고 미묘한 탄성을 자아내며 가족 구성원의 취향을 저격했다. 고소한 날개를 선호하는 사람, 메어지듯 퍽퍽한 닭 가슴살을 좋아하고 가슴 가운데 물렁뼈로 맛의 기쁨을 찾는 사람 등 좋아하는 부위가 각자 다르지만 보통은 닭다리가 맛있는 부위의 최고봉에 자리한다.

닭다리는 보슬보슬한 살점과 적당히 배어든 기름기가 조화롭게 어울려 맛의 풍미를 한 층 고조시켜준다. 그런데 닭 한 마리에서 나올 수 있는 다리는 안타깝게도 두 개뿐이다. 먼저 닭다리를 차지했다면 다행이지만, 순서에 뒤처질 때면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맛의 향연을 속절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아버지가 통닭을 사오셨던 곳이 지금은 수원통닭골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원통닭골목에는 50년 전통의 매향통닭과 수원통닭,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등 많은 점포들이 성업중이다.

수원의 팔달문 수원천 주변의 통닭골목은 수원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 2차로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로 자리잡혀 있다. 통닭 한 마리,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닭똥집 한 접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순삭’한다.

오늘 수원 통닭골목에서 닭다리, 닭날개, 닭똥집을 맛보며 옛날의 기억을 소환해보면 어떨까 한다.

김봉균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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