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매를 맞으면서도 이유를 모르면…

쌍둥이 형제가 있다. 큰아이는 매일 사고를 친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며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면 그릇을 깨고, 다리미질을 하겠다고 나서면 옷을 태워 먹는다. 작은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형만 쫓아다닌다. 형이 사고를 칠 때마다 부모에게 “형이 또 그릇을 깨트렸다. 형이 사고 쳤으니 나를 사랑해 달라”고 고자질만 한다.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자식에게 미소를 짓겠는가. 그릇을 깨더라도 설거지를 하는 큰 아이인가, 옆에서 형의 잘못을 일러바치기만 하는 동생인가.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압승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승리다. 더불어민주당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다.

총선이 끝난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의 무서움을 또 한 번 느꼈다. 이해찬 대표는 “승리의 기쁨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정신 바짝 차릴 때”라며 당원들에게 말조심 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승리의 근본적 이유인 문재인 대통령 역시 16일 첫 메시지가 ‘총선’이 아닌 ‘세월호’다. “그리움으로 몸마저 아픈 4월”이라는 문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 있다”며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다. 총선은 언급조차 없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자신들이 왜 국민에게 회초리를 맞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황교안 대표는 “나라가 잘 못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통합을 이뤘지만 화학적 결합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형이 그릇을 깼는데 왜 형을 안 혼내주느냐”고 부모에게 고자질하며 형한테 회초리를 때려 달라고 떼쓰는 유치원생 같다.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자세도 갖추지 못한 정당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야당도 변화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겠다. 국민이 이 정부를 도우라고 한 만큼 야당도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황 대표보다는 김 위원장이 고수다. 김 위원장의 저 말 속에 패인도, 부활할 방법도 다 들어 있지 싶다.

다음 선거는 2022년 3월 대선이다. 내년 이맘때는 여야가 대선 경선 레이스를 준비한다는 말이다. 통합당은 반성할 시간도, 만회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번 패배로 충격도 받았고 혼란스럽겠지만, 그럴 때 가장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은 ‘일하는 것’이다. 억지로 싸우지 말고, 습관적으로 딴지걸지 말고, 일하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 국회의원선거까지 계속 회초리를 맞고 있는데, 아직도 왜 맞는지 모르면, 방법이 없다. 계속 맞는 수밖에.

 

이호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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