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스크 품앗이

코로나19 확산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과거 감염병을 주제로 다뤘던 영화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8년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나 2013년 김성수 감독의 작품 감기(The Flu)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며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도시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이들 영화는 공통적으로 눈앞에 닥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러스보다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사재기와 약탈 범죄를 저지르는 무너진 인간성에 초점을 맞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늘면서 우리 사회 공포가 커지고 있다.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시민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이다 보니 전국적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급기야 정부는 마스크 5부제라는 고육지책까지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마스크 구매가 어렵다 보니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이웃들 간 불신과 다툼이 늘고 있다. 최근 경기도 광주에서 한 손님이 약국에 마스크가 다 떨어져 팔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이에 격분해 낫으로 약사를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하남에서는 공적 마스크 구매 5부제에 따라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음에도 마스크를 사려다가 약사가 이를 거부하자 약국 출입문을 발로 차 파손한 한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뿐 아니라 마스크를 사고자 새치기한 사람과 다툰 사연,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해 우체국 직원 또는 약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의 목격담 등 마스크로 인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언론이나 SNS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걸까?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공포와 불안이 지배하는 위기 상황에서 무너지는 인간성을 극복 가능케 한 것은 바로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이타심이었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경찰관들과 시민들 사이 마스크 품앗이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 50대 여성이 안산 일동파출소를 찾아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마스크 50장을 기부하고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시민도 마스크 30장을 기부했다. 지난 12일에도 한 어르신이 수원 세류지구대를 방문해 마스크 15장을 건넸다. 범죄 또는 사고 현장에서 감염의 우려가 있는 경찰관들이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전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전달받은 경찰관들은 마스크를 다시 동네에 거주하는 중증 장애인들과 70대 홀몸노인 등에게 전달했다. 일반인보다 면역력도 약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기부한 마스크를 다시 꼭 필요한 시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전파된다. 감염된 사람이 늘수록 바이러스는 힘을 얻는다. 나의 안전을 위해 역설적으로 이웃의 안전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우리 사회 공포와 불안이 커지는 이때, 경기도 관내 지구대·파출소에서 있었던 마스크 품앗이가 코로나를 극복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김경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홍보협력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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