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엉터리 복원논란, 화석정 본래 모습 찾는다

1937년 일제 식민시대 언론에 보도됐던 화석정의 모습. 동서남북 뻥뚫려 있는 지금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사방이 창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제공 : 김현국 파주향토연구가 겸 IT연구가
1937년 일제 식민시대 언론에 보도됐던 화석정의 모습. 동서남북 뻥뚫려 있는 지금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사방이 창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제공 : 김현국 파주향토연구가 겸 IT연구가

조선 중기 유학자이며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 선생(1536~1584)의 학문연구소였던 파평면 ‘화석정(花石亭)’의 엉터리 복원 논란(본보 지난해 8월22일자 4면)과 관련 파주시가 복원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용역에 나선다.

군사정권시절인 196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화석정(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에 대해 그동안 향토학자들은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본래 모습과는 다르게 복원됐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4일 파주시에 따르면 화석정의 복원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다음달께 발주 하기로 했다. 화석정의 원래대로 복원은 최종환 파주시장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앞서 시는 용역비로 도비 2천만 원, 시비 2천만원등 총 4천만원을 확보했다.

시는 이번 용역방향으로 예전의 화석정에 대한 건축학적 특징 등 모습에 대한 관련 문헌과 사진자료를 다량 확보,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해체 후 복원할지 향후 복원 방향을 결정하는 학술고증연구에 주안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시의 화석정 복원관련 용역발주에 따라 지역내 향토사가들은 환영하면서 제대로 된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현국 향토연구가 및 IT연구가는 “연구결과 화석정 구조는 허봉 선생의 ‘조천기(朝天記)’에 남아 있는 것처럼 정자 일부분에 방을 만들고 구들을 놓아 겨울에도 사용했다”며 “화석정은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거나 유흥을 즐기는 유흥상경(遊興賞景) 정자가 아닌 상시 사용하는 학문연구소로 쓰였다”고 강조했다.

차문성 파주문화원부설 향토사연구소장은 “이의무의 ‘화석정부병서’와 율곡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의 ‘묘표음기’에 기록된 ‘별서’를 근거로 화석정은 기화요초(奇花妖草)와 괴석이 존재했던 별서원림(別墅園林 내외부경관감상별장)이었다”며 “윤증의 ‘명제연보’에는 화석정은 정면 세칸, 측면 두칸의 판장문(널빤지로 만들어 달아 놓은 문)을 설치했다. 잠을 잘 정도로 방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복원방향 결정은 오는 10월 예정인 용역결과를 본뒤 각계의 의견을 수렴, 최종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화석정은 고려말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가 살던 곳으로 이이 선생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1443년 물려 받았다가 1592년 임진왜란 중 불에 타 없어진 후 증손인 이후방ㆍ이후지에 의해 1673년 복원됐다. 하지만 6ㆍ25전쟁 때 다시 소실됐다가 1966년 복원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글씨체로 현판을 써 지금까지 걸려 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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