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서에 거안제미(擧案齊眉)란 말이 나온다. 양홍이란 학자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 올려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내외가 따로 없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요즘이야 이런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행여나 겁 없는 남편이면 모를까···. 이 같은 남존여비(男尊女卑)성 용어는 현 시대 흐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어(古語)가 된 지 오래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다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고 부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세간에 떠돌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선 매년 ‘세계 성 격차지수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각국의 남녀 간 경제참여 기회, 교육,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등 4개 분야 통계를 이용해 성별 격차를 지수화한 것이다.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53개국 중 108위를 기록했다. 해당 자료 발표 직후 우리나라 순위가 실제보다 왜곡됐단 지적들도 많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각국의 정치·경제·사회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4개 분야의 남녀 격차를 중심으로 상대평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수가 낮게 나타났다”고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국제단체에서 발표한 자료다 보니, 잘못된 통계라고 무시해버리기도 석연치 않다.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팍팍한 게 현실이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여성임에도, 조직 내에서 일정 서열 이상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많은 직장인 여성들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될 수 있단 두려움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젊은 부부임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도 1명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다.
깊어만 가는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선 양성평등 분위기를 확산하고 여성이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거나 거창할 필요까진 없다. 실천 가능한 조그마한 것부터 하나씩 바꾸고 만들면 될 일이다.
남동구의 경우, 여성들의 육아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먼저 풀어보자는 취지로 전국 최초로 ‘아빠육아휴직 장려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육아휴직 남성을 대상으로 월 50만원의 장려금을 제공하고, 최대 6개월간 300만원까지 지원한다. ‘아이함께 자람터’ 조성도 아이를 둔 지역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곳에선 미취학 영아 또는 어린이집을 다녀온 유아들이 부모와 함께 모여 놀이나 체험학습 등을 할 수 있다. 지난해 1곳을 설치한데 이어 올해는 5곳의 아이함께 자람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여성에게 가탈을 부리는 사회 분위기는 세월이 약이겠거니 하며 방치만 할 일이 아니다.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여성의 사회참여를 늘리고 양성평등 분위기를 정착시켜야 한다. 여성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주는 도시환경이나 건설 등 도시공간 또한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남동구는 올해 여성친화도시 신규지정을 목표로 관련사업과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여성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고 출산을 기피하고 범죄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도록 만들 것이다.
독일 철학자인 니체는 ‘여자를 만든 것이 신의 두 번째 실수였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진리를 놓쳤다.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하고 국가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이강호 인천 남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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