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빼앗긴 겨울, 건강한 봄으로 되찾아 보자

동장군 기세로 잔뜩 웅크려 있어야 할 요즘, 봄바람처럼 순한 아침 공기를 맞고 있자니 빼앗긴 겨울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 된다.

미국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1962년에 사람이 뿌려 놓은 ‘백색 가루(DDT)’가 자연생태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통해 큰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 자연의 소리를 되살리고자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은 이후 지구의 날(4월 22일) 제정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환경변화에 반응하고 있는 곤충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지구상 곤충의 총수는 1천 경에 달하고 무게는 인간의 17배이며, 200만 종이 넘을 정도로 명실공히 지구환경의 지표생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구를 대표하는 곤충이 최근 들어 환경변화로 위협받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2017년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독일의 60개 보호지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의 75% 이상이 감소했다는 충격에 이어, 2019년에는 41%에 달하는 곤충 종이 한 세기 안에 멸종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겨울철 강우량 증가에 따른 차고 습한 기후는 장거리 이동 곤충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평균기온의 상승은 곤충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를 수십 일 앞당기고 있다.

우리는 화학농약의 무분별한 사용과 서식지의 파괴, 지구온난화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매체를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빼앗긴 겨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보자. 농업인은 환경보전을 위해 최적의 시기에 병해충 방제로 농약 사용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따뜻해진 겨울 날씨로 인해 해충들은 더 빨리, 그것도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관행에서 벗어나 방제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또한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해충들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따라서 약제는 꼼꼼히 선택하되 농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방제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내 많은 연구자가 천적 곤충, 페로몬, 미생물, 식물추출물을 이용한 유기농업자재 등 생물농약을 개발하고, 꿀벌이나 천적에게 안전한 농약을 재평가하는 등 환경보전에 노력하고 있다.

소비자의 먹거리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소비자가 깨끗하고도 안전한 농산물을 찾는 동안 벌레 먹은 자국이 보일라 치면 시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쓰레기 취급당하거나, 시장에 나가더라도 한구석에서 애처롭게 진열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벌레 먹은 자국이 있더라도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인들이 얼마나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지 알아주었으면 한다. 작은 구멍이 뚫린 채소를 보면서 그 작은 구멍이 가진 큰 가치를 알아주고 누구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공존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으면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다. 문명의 발달은 분명 그 그늘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속 가능한 환경의 보전을 위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그 해답은 지구의 환경에 의존하고 이용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제강점기 이상화가 되찾고 싶었던 ‘빼앗긴 들의 봄’이, 이제는 빼앗긴 겨울을 되찾고 찾아올 봄에 대한 염원으로 다가온다.

이영수 경기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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