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대한민국이 경제적 자립을 이뤄나가던 그때 전 국민의 뇌리에 박힌 순간이 있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레이건 대통령이 비행기 앞에서 오른쪽 손을 흔들며 웃고, 낸시 레이건 여사는 그 옆에서 어린 동양인 아이 2명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인채 손을 잡고 있다.
낸시 여사와 손을 잡은 리본 달린 원피스의 여자 아이와 두꺼운 점퍼의 남자 아이는 고마움과 수줍음에 어쩔 줄 모른다.
1983년 11월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가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날 공항의 장면이다.
낸시 여사는 방한 당시 국제자선기구 기프트오브라이프 인터내셔널(Gift of Life International·GOLI) 주선으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한국인 어린이 2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수술을 지원했다.
당시 4살이던 이길우와 7살이던 안희숙은 그렇게 낸시여사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
낸시 여사의 이 같은 행보를 감동적이면서도 슬프게 바라보던 이가 있었다.
지금의 가천대길병원을 만든 이길여 가천길재단 이사장이다.
1978년 전 재산을 쏟아 인천시민을 위한 종합병원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한 그는 1982년 의료취약지던 양평군에 양평길병원을 세웠다.
그에게 당시 낸시여사의 행보는 고마우면서도 슬픈 일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의 의료기술로 고쳐줄 순 없었을까.’
오늘의 가천길재단은 다른 나라에 의학교육을 전수하고, 최첨단 시스템의 길병원을 갖춘 재단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당시의 감동을 잊지 않았다.
1992년 베트남 의료봉사에서 만난 여성 심장질환자를 국내로 데려와 수술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부터 국외심장병환자 초청 치료사업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2020년 현재 17개 의료취약국 431명이 길 병원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1983년 당시의 슬픔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또 다른 의료취약국을 향한 도움의 손길로 이어진 셈이다.
그때 그 감동을 가슴에 담아 베품으로 옮기는 삶, 평생 베품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인천본사 김경희 사회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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