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샤워실 안의 바보와 넛지있는 규제정책

‘A fool in the shower room’이라는 말이 있다. 해석하면 샤워실 안의 바보라는 말이다. 바보가 갑자기 샤워기를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오고, 바보는 놀라서 뜨거운 물로 돌리는데, 이번에는 뜨거운 물에 놀라서 다시 차가운 물로 돌리는 것을 반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용어로, 본래는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규제와 그 개혁에도 이 관용구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규제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근본으로 삼는 나라에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규제의 이유가 되는 특정한 행정목적의 실현이란, 시대의 요구와 상황에 따라서 그 무게의 경중이 쉽게 바뀔 수 있다. 제도적으로 규제의 일몰제를 두고, 일정 기간마다 해당 제도가 유효한지 심사를 받는 이유다.

비록 제도적으로 규제를 검토하고 조정할 수 있더라도, 규제는 한번 적용되면 예외를 일부 제외하면 모든 국민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규제를 적용할 때 샤워실 안의 바보처럼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규제를 하려면 규제를 하지 않았을 때의 영향과 규제를 하였을 때 제한받는 국민의 권리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고 실행해야 한다. 규제에서도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고려하지 않고 샤워기만 돌리는 샤워실 안의 바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가 변해갈수록 기존의 규제가 그 의미를 도전받기도 하고, 새로운 종류의 규제가 요구되기도 한다. 최근 공유차량업체 타다 사건 경우처럼 사회의 기존가치가 변함에 따라 기존의 규제가 도전을 받기도 한다. 또는 법원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등으로 기존의 규제의 근거가 달라지기도 한다. 근거가 달라지면 기존의 권리의 제한을 해소하거나, 새로운 권리의 제한을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물 온도를 맞추는 현명한 규제 또는 규제해소가 필요하다.

예전에 국내에 넛지라는 책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었다. 넛지는 팔꿈치로 쿡 찌르듯 자유로움 속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이끌어내는, 현대 사회의 정책 구현에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국제사회 속에서 강한 규제는 경쟁력 상실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면서 꼭 필요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넛지있는 규제정책이 요구된다.

규제와 정책을 바꾸는 새로운 근거가 생겼다 하더라도, 대상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무대뽀로 몰아가면 규제로 인한 폐해를 새로운 규제로 막으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과정에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가 더 깊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숲에서 늑대를 모두 제거하자 숲이 황폐해진 미국의 옐로스톤공원의 사례처럼, 규제를 다루는 것은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와 변화에 맞춰서, 샤워실 안의 수온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처럼 현명하게, 그리고 자유과 권리의 제한을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넛지있는 정책으로 규제를 다루어 주기를 기대한다.

오세규 경기동부보훈지청 보상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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