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 밭에서 신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고쳐 쓰지 말라>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글이 있다. 풀이를 보니 의심받기 쉬운 혐의를 말하며 “외 밭에서 신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바로잡지 않는다”로 풀이된다.
지난주에 지인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고향 조상님 묘역에 들러 보살피고 비탈길을 내려오니 밭 뚝에 사과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에 사과나무가 없었는데 50년이 지나니 풍성하게 붉은 사과를 매단 나무가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탐스러운 사과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으므로 밀착해서 사진을 3컷 찍고 몇 발짝 걸어가서 선채로 인터넷 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랄까. 사과밭 주인인 초등 1년 후배가 트럭을 운전해 눈앞에 정차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다. 정말로 일부러 시간을 맞춰도 이렇게 정확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차 안에서 빼꼼 내다보므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안부를 묻고 차는 떠났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과나무를 잘 키웠다’는 인사말을 했다. 차를 운전해 후배가 떠난 후에 머쓱한 상황이 찾아왔다. 사과나무 아래에 경고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사과 따지 마세요. 따다 걸리면×××” 사진만 찍었다고, 사과를 따지 않았다고 변명하기도 어색했다. 하지만 후배는 등에 멘 가방 속이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라 말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방을 열어 보이는 것도 모양이 아니다.
지금 직계 5대조께 인사드리고 선대를 모신 선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6대 이상 18대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을 모두를 걸고 사과를 만지지도 따지도 않았고 오직 근접 촬영만 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변명을 들어야 할 사과밭 주인인 초등학교 후배는 떠났다. 조금 전에 탁 트인 길에서 차를 운전해 오면서 자신의 사과밭 뚝에 서 있는 남자가 지금 사진만을 찍고 있다고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인 듯하다. 내가 사과밭 주인이라도 저만치서 트럭을 운전하며 목도한 이 광경을 사진만 찍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페이스북에 이 심정을 올리면 경로를 거쳐서 한 달 후 두 달 후에라도 이 마음이 전달될까 하는 심정으로 사진과 글을 올렸다. 이제 동네 사람 누구를 통해서 이런 글이 올랐더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억지스럽다. 그럼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할까. 이 또한 불편할 수 있다. 나는 사과를 따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조금 많이 거시기하다. 과거에는 사과나무가 참으로 소중한 자산이었다. 대구에서는 사과나무 몇 그루로 대학을 보냈다고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귤 나무로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한다.
소중한 사과나무 앞에서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산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어찌 설명할 방법도 어렵고 매체도 정하기 쉽지 아니하며 전달할 사람을 정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 정답일까. 그런 심정을 글로 쓰면서 고사성어 하나를 알게 됐다. 이하부정관 과전불납리(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 과수원의 사과는 길 건너에서 바라보는 것이지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을 대상이 아니었다.
고향은 1975년부터 그린벨트다. 어려서 본 동네 집들이 몇 채 개축만 됐을 뿐이다. 눈 감고 누구네 집이 어디쯤인지 그릴 수 있다. 여유롭게 찾아간 고향마을에서 사과나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지만 자칭 ‘사과 아닌 사과하는 글’을 쓰고 있다. 사과나무 사과는 근접 촬영하면 안 된다. 사과를 따지 않았다고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장황한 ‘사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이강석 前 남양주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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