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 유명 인사들의 기부 소식도 들린다.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얼굴 없는 천사’들의 소식도 전해진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이웃을 챙기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다. 기부천사들의 선행은 매년 이어진다. 그래서 이들을 얘기할 때 ‘올해도 또’ ‘OO년째’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는다. 어떤 이는 면사무소에 쌀 포대를 놓고 가고, 어떤 이는 적지 않은 돈을 보낸다. 연탄을 보내는 이도, 신발을 보내는 이도 있다.
‘볼펜 장수’ 출신으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기부천사 이남림씨(73)는 지난 24일 여주시에 2억 원을 전달했다. 이씨의 아들이 시청을 찾아 수표와 함께 손편지를 전달했다. 편지에는 “여주시 관내 형편이 어려운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 성금을 전달하게 됐다”고 쓰여 있었다. 이씨는 20대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볼펜ㆍ만년필 장사를 시작해 돈을 모았고 안경도매점을 하며 자수성가했다. 2006년과 2007년, 불치병을 앓는 아이들을 돕는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30억 원씩을 기부한 바 있다. 앞서 2002년ㆍ2003년에도 태풍 루사와 매미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을 위해 1억 원씩 성금을 내는 등 최근까지 70여억 원을 기부했다.
인천에서도 지난 20일 익명의 기부가 잇따랐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가 한 마트에 부탁해 쌀 20㎏ 100포를 주문하고 연수2동 행정복지센터로 배달을 요청했다. 같은 날 한 주민은 청학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와 동전 보따리를 전달했다. 6개 통에 모은 동전의 총액은 51만7천500원이었다. 이 사람도 본인 신원을 알리지 않았다.
해마다 잊지 않고 기부를 이어가는 익명의 기부자들은 전국 곳곳에 있다.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60대 익명 기부자는 올해도 공동모금회에 2천300여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9일 서울 청량리역 자선냄비에 1억1천400만1천4원이 적힌 수표를 넣고 간 사람도 있다. 울산시 울주군에선 지난 20일 한 기부자가 언양읍에 신발 40켤레를 기부했다. 이 사람은 2017년부터 모두 140켤레 신발을 보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이들은 주위를 훈훈하게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예년에 비해 세밑 온정이 줄었다고 한다. 불경기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마저 얼어붙고 있다니 안타깝다. 기부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 없는 천사들의 상당수는 자기 형편도 넉넉지 않은데 나누고 있다.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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