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그 시대 사회상을 담아낸다. 올해 한국영화에 비친 청춘의 모습은 밝지 않다. 취업준비생, 고시생, 비정규직, 백수 등 힘겹게 현실을 버텨내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취업난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지난달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체감 실업률이 20%를 넘었다. 청년 5명 중 1명이 실업자인 현실을 영화가 반영한 것이다.
940만 만객을 모은 ‘엑시트’는 취업에 계속 실패하는 만년 취준생 용남(조정석)이 웨딩홀에서 일하는 의주(윤아)와 우연히 만나 함께 재난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10월 개봉한 독립영화 ‘오늘, 우리’도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는 젊은이를 그렸다. 여성과 운동이란 소재를 결합해 호평받은 ‘아워 바디’의 시작도 취업난이다. 8년 차 고시생 자영은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자 시험공부를 때려치우고 달리기에 몰두한다.
안전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은 불안하다. 불안한 만큼 사회 불만도 크다. 청춘들이 겪는 절망적인 풍경들, 이를 바라보는 기성세대도 가슴이 아프다.
올해 초 ‘저 청소일 하는데요?’란 책을 낸 김예지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디자인회사에서 인턴도 했지만, 취업이 안돼 생계를 위해 빌딩 청소일에 뛰어들었다. 책엔 젊은 대졸자가 4년간 청소일을 하면서 온몸으로 느낀 세상의 편견 등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김씨는 “그림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면 청소일은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대졸 취업자 가운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판매직, 단순 노무직 같은 일자리에 ‘하향취업’한 사람이 약 30%라는 한국은행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00년 22~23%였던 하향취업률은 올해 9월 30.5%까지 증가했다. 대졸자 수는 급증하는데 경제성장이 더뎌 고학력 노동을 시장이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향취업자들의 평균 임금은 적정 취업자보다 40% 가까이 낮다. 더 문제는 하향취업자 중 1년 뒤 대졸 수준의 직장을 찾는 경우가 5%도 안되고, 90% 가까이는 고졸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진학률은 2009년 77.8%를 정점으로 지난해 69.7%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일자리 증가 속도가 더 빨리 떨어져 대졸자 취업은 갈수록 어렵다. 우리 사회의 학벌 만능주의, 학력 과잉 문제 역시 심각하다. 대학진학률 70%는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한 일자리를 대졸자가 차지하면 교육투자 및 인적자본 활용의 비효율이 생긴다. 단기간에 학력 과잉 구조를 깨긴 어렵다. 실수요형, 실무형 교육을 늘려 대학교육을 시장 수요에 맞게 재편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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