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묵은해를 보내고 2020년 새로운 한 해를 맞았다. 동해를 가르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두 팔로 안는다.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안으면서 저 멀리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시간을 쪼개 거기에 숫자를 부여한 것은 인간이 지닌 지혜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하루를 24시간, 한 달을 30일, 1년을 12개월 365일로 나눈 그 지혜가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이 그날일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시간을 쪼개고 거기에 삶의 목표를 부여함으로써 생존에만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 결과 오늘의 눈부신 인류 문명의 현주소를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해치고 어렵지 않은 해가 없었을까마는 지난해는 참으로 어려운 한 해였다. 나라 밖은 물론 나라 안 역시 고되고 힘든 한 해였다. 나라 사정이 그러하니 개인은 더 말해 무엇하랴. 삶이 팍팍한 것은 둘째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먼 것은 고사하고 갈등과 반목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 간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고, 편을 가르고 대립하는 양상까지 벌어지다 보니 나라는 하나인데도 ‘반쪽 국민’으로 살아야만 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존재로 후대에 기억될 것인가. 어려운 과제 같지만 알고 보면 그리 난해한 일도 아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기답게’ 사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기업인은 기업인답게, 학자는 학자답게, 작가와 예술가는 작가와 예술가답게, 주부는 주부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신분과 직분에 맡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긍심과 행복을, 나아가 바른 사회를 건설해야겠다. 그러지 않고 지난날처럼 자기답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염치없이 살아왔다. 아니다.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서로 숨기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살아왔다. 우리의 얼굴 뒤에 숨겨진 저 수치심, 떳떳지 못함을 이젠 숨기지 말고 용기 있게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정직하게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떵떵거리는 저 오만한 행태를 다시는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 법 이전에 도덕과 양심이 먼저 거울 노릇을 해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 서로서로 끌어안는 포용의 삶이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이 모여 사는 집단이나 사회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복잡한 세계다. 개인이 지닌 그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고 이를 하나의 에너지로 창출해 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정신이요 기술이다. 바라건대, 2020년은 분열과 대립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되는 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난날처럼 반목과 갈등이 지속된다면 개인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문화와 예술을 존중하는 삶이어야 하겠다. 문화와 예술은 개인의 행복은 물론 여유 있고 향기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밑거름이다. 작디작은 귤 한 개가 커다란 방을 빛과 향기로, 맛으로 가득 채우듯이 문화와 예술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힘이며 지혜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던 김구 선생은 그의 저서《백범 김구》를 통해 ‘높은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새해에는 사람 사이의 온기가 살아 있는 해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만나면 반가운 세상,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아름다운 숲이 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우리 주위에는 어렵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과 마음을 주는 사회였으면 한다. 나무와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살면서도 다투기는커녕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저 숲처럼, 각양각색의 꽃들이 어울려 살면서도 시샘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저 꽃밭처럼, 따뜻한 말과 따뜻한 체온으로 서로 감싸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
새해 첫날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하더라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0년 새해는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시험하는 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여기서 머물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배는 출항을 위해 있는 것, 노를 저어야 할 일꾼은 바로 우리들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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