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바뀌어야 살아남는다지만

최근 경제적인 이슈들을 살펴보면 ‘빅데이터’ ‘블록체인기술’ ‘AI로봇’ ‘욜로’ ‘있어빌리티’ ‘덕 후’등의 낯선 단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에 우리가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느냐가 사회생활에 성공하느냐를 판가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이들은 여러 방면에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고 대한민국을 변화시켜 가고 있다. 반대로 그 단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도태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국제적 정치의 불안감은 우리나라에도 별반 다르지 않고 전 세계는 좌ㆍ우의 대결이 더 치열해 지고 있다. 한국사회도 좌. 우의 갈등은 더욱 무섭게 갈라져 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지금 극심한 갈등대결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개신교 안에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이슈로 ‘광야교회’가 생겼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해내고 있다. 세대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하여 계급의 갈등과 지역의 갈등과 그리고 정치적 갈등까지 우리 사회는 격한 갈등의 날들로 연말을 맞이했다. 모든 고등종교는 윤리적이며 상식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그 상식이란 기준은 무엇일까? 표현의 표출된 겉모습일까? 아니면 표현의 내면의 내용이 되어야 할까?

21세기를 바꾸어 가는 새로운 혁신 중에 한 분야가 바로 로봇이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과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로봇이란 기계는 인간들이 할 수 없는 대량생산과 견고한 첨단의 일들과 위험스런 일들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잘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기능이 뛰어난 로봇이 ‘인간보다 위대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로봇처럼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로봇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시대에 모든 것이 바뀌어야 살아남는다고 말하지만, 인간은 절대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의 말씀일 것이다. 고등종교의 출발이 윤리적이며 상식적이어야 한다면 모든 책임감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이 마귀가 아니고 나와 종교가 다르다고 나와 다른 종교인들이 귀신이 될 수 없듯이 사회의 변화에 늦거나 그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그 사람의 존귀함을 놓쳐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임을 신앙인들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떼어 버릴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세상은 아무리 빨리 변해가고 모든 것을 바꾸어야 살아남는다는 요란한 구호가 세상을 덮어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 어둠이 벗어지고 진정한 새벽이 오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새벽 태양의 빛으로 분명히 보일 때 참 새벽은 오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에서 뛰는 심장박동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우리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해 주고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은 사랑으로 변해가야 하고 따스해져 간다고 믿는다. 진정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신조어가 아니고 바로 뜨겁게 뛰는 심장으로 사람을 사랑하려는 내 마음이 되어야 한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 이슬람 선교학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