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봉건시대부터 전해내려 오고 있다는 독일의 유명한 속담 하나. ‘Wessen Brot ich ess, dessen Lied ich sing’(누군가의 빵을 먹으면, 그 사람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영주의 토지에서 경작한 밀을 빻아 만든 빵(Brot)을 먹게 되면 노래(Lied)마저 영주의 구미에 맞춰 부를 수밖에 없는 법. 봉건영주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 채 삶을 연명해 나가야 하는 농노들은 결국 영주의 세계관과 이해에도 예속될 수밖에 없음을 이 짧은 속담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세에 생겨난 속담이 사라지지 않고 현대에도 많은 독일인이 일상적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데에는 그 함의가 시공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성에 닿아 있어서일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실무 직원으로서 국회의원 등의 회계보고서를 검토하다 보면 정책개발을 위한 용역 연구비처럼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항목뿐만 아니라 지역사무소 임대료, 사무실 유지를 위한 여러 가지 물품 구입비용, 유급사무직원의 인건비 등 갖가지 소소한 지출항목까지 볼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정치활동에는 아주 많은 자금이 필요함을 실감하곤 한다. 정치와 정치자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어쩌면 한 몸과도 같은 관계인 셈이다.
하지만 극소수 재산가가 아닌 정치인 대부분이 정치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터, 어떤 정치인이 부족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고자 제 이익을 관철하려고 접근하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제공하는 자금에 의존하게 되면 자연스레 그 자금을 지원하는 특정 소수 이익을 대변하는 편향적인 정치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대의제(代議制) 정치체제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온전한 정치의 주인이 되려면 평범한 국민 모두가 정치자금의 조성과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인 정치자금 후원문화의 정착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를 위해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당의 당원이 아닌 일반국민도 투명한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후원금’과 ‘기탁금’이 바로 그것이다.
후원금은 특정 정당·정치인을 후원하려는 개인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원회에 기부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또는 그 밖의 물건을 가리키며, 기탁금은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또는 그 밖의 물건을 말한다. 이러한 정치자금 후원제도는 정당·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을 정치자금 제공 주체인 국민의 의사에 기속(羈屬)시켜 국민과 공익을 위한 정치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국민의 정치자금 제공 편의를 높이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후원금센터(www.give.go.kr)를 운영하고 있어 해당 사이트를 통해 간편하게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다. 나아가 정치후원금을 기부하면 본인의 세액공제 범위에서 10만 원까지는 전액을, 10만 원 초과분은 해당 금액의 1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정치자금 후원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제도적인 틀을 완비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의 투명한 정치자금 후원은 단지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위한 재원을 지원하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국민이 정당·정치인 등 정치세력에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라는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제공한다면 그 빵을 먹은 정치인은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과 우리 사회의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노래하는 진정한 공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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