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고착상태이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고비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꾸준히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만약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서 경제제재가 완화된다면 가장 먼저 추진할 수 있는 남북경협은 관광과 농업 분야가 될 것이다.
농업은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서나 한반도의 포괄적 안보를 위해서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북한은 농토가 넓지 않고 토질도 척박하다. 따라서 남한과 비교하면 경지면적이 넓고 농가인구도 월등히 많지만 생산효율은 크게 뒤떨어진다. 비료·농약·농기계 등 농업생산 자재 공급도 제한적이다.
북한 농업의 도약적 발전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비료와 농기계 투입을 증가시켜 생산량 증대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과 관련된 생산·가공·유통·시장 등 모든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혁신해야 한다. 또한 북한 영토를 뛰어넘는 시각이 필요하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업은 1차 산업만이 아니라 2차, 3차 산업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 사례를 벤치마킹해보면 이미 농업은 물류·유통산업이자 지식산업이 됐다. 영토는 작고 농가수는 7만 호에 불과하지만 농식품 수출규모가 세계 2위인 농업강국이다. 항만·운하·공항 등 운송 인프라가 발달했기에 수출이 GDP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인구 3만 6천 명의 작은 도시인 바헤닝언 ‘Food Valley’에서는 농민·기업·연구소의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농업혁신이 진행된다. 글로벌 농식품 기업들의 주요거점을 포함해 연구소 20개, 과학기업 70개, 식품기업 1천440개가 있다.
지경학적 강점을 가진 북한이 동북아의 네덜란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주변 국가와 효율적인 네트워크가 연결된 상태를 가정해서 북한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과 추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농작물 생산에 국한하지 않는다. 농지를 경작하는 1차 생산, 중간 가공, 글로벌 유통, 소비시장 연결 등 농업 관련 일련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북한의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으면 된다.
둘째, 남북한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설계한다. 북한에서 자체 조달 가능한 기술과 역량에 국한하지 말고, 남한이 보유한 농법·농기계·농업회사 등을 활용해 상호보완적 협력을 구상해야 한다.
셋째, 북한 지역 경작지에 국한하지 않는다. 척박한 토양 개선을 위해 화학비료를 투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남북 협력을 통해 첨단농법을 갖춘 북한 농민이 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로 진출해 글로벌 농부가 되는 것이다.
넷째, 미래 한반도의 물류망을 활용한다. 북한의 지경학적 경쟁력을 생각해 보면 효과적인 물류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항만·철도·도로망을 바탕으로 복합물류기지를 만들고, 농식품 가공산업 및 유통 분야의 동북아 허브를 육성하는 것이다.
다섯째, 첨단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농업을 육성하겠다는 관점을 탈피하고, 고부가가치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마고원에 자생하는 허브식물이나 북한 전통식품을 연구하는 것이다. 약효 증진을 위해 재배환경을 최적화한 인공지능 스마트팜 기술을 도입할 수도 있다.
우선 해결할 과제는 농업분야 협력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마련하는 것이다. 남북한 전문가 포럼 및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첨단 농업기술 협력을 위한 테스트베드를 조성하자. 농업은 한반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유망한 분야다. 북한 농업의 도약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꿈꿔 보자.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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