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 이는 국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국가 경제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는 1950년 말 1만2천 개에서 시작, 2014년 350만 개로 성장하는 등 국가경제의 근간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생산 주체이자 내수 견인과 유효수요 창출 주역인 중소기업은 국내 부가가치 창출의 절반을 담당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달성에 한몫했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중소기업인들의 기운이 많이 빠진 듯하다. 최저임금의 급속 인상으로 홍역을 치른 게 엊그제 같은데 현장과 맞지 않는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과 지나치게 엄격한 안전 및 환경규제로 기업을 계속해야 하나 싶다는 말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특히, 창업 1세대들은 가업승계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자식들이 져야 할 과도한 세금 부담과 썩 우호적이지 않은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에 이어 해외 직접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해외 직접투자가 100억1천500만 달러(11조5천870억 원)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조 원을 돌파했다 한다.
이는 2014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국내 제조업의 미래가 여전히 밝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진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생산라인 자동화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변화에 따른 국내 노동력 감소 현상은 자연스럽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탈(脫)한국화’ 현상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베트남은 삼성의 투자 유치를 위해 국회 동의를 구해 법을 고치면서까지 세제혜택을 주었고 삼성은 10년 만에 10만 명이 넘는 고용 창출과 베트남 GDP의 28%를 담당하는 결과로 응답했다.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규제완화와 친 기업 카드를 과감히 꺼내든 결과인 셈이다. 내년부터 우리나라에는 근로자가 50인부터 299인 사업장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다.
관행적인 장시간 근로시간 개선과 일과 가정 양립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또 한 번 중소기업인들 기(氣)가 꺾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을 몰아서 하는 연구개발(R&D) 부서나 24시간 설비를 가동,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현장은 주 52시간제에 맞춰 인원을 더 뽑기 어렵다. 늘어나는 인건비만큼 주문이 더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로자를 뽑으려 해도 이미 중소기업 생산현장에는 내국인을 대신하는 외국인들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어려운 것은 물론 납기도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은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생산기지 해외 이전 유혹 카드를 만지작거리게끔 한다.
불규칙적인 주문과 만성적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충격 최소화를 위해서는 노사자율에 기반 한 선택근로제와 연장근로제 등 제도보완이 필수다. 작은 내수시장 한계를 뛰어넘고 글로벌 스타트업 등장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일자리를 채우지 못한다면 결국 장수 중소기업 육성이 그 대안이다. 글로벌 장수 중소기업 태동을 위한 정부와 국민모두가 중소기업 기(氣) 살리기에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추연옥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중소기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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